사유하는 삶에 대하여

나로서 살아가는 감각

by YOZO

나는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바라, 무엇에 취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골똘해지는 이유는 아마, 내 삶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삶의 유희보단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 내게 사유는, 단어가 주는 거창함에 비해 그저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사유하는 삶을 지향한다. 무탈한 어떤 이의 삶을 동경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를 존경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는 작은 일에도 잠시 멈춰 설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멈춤은 삶을 더 깊이감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게 하고, 곧 세상을 조금 더 풍부하게 경험하게 한다.


한 개인이 갖는 개성이란 이런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풍기는 따뜻함 혹은 냉철함. 나는 그 시선이 만들어내는 개개인의 무드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갖게 한 그들의 삶을 존경한다.

그 속에서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생각지 못한 방식의 시선은 나를 깨뜨린다. 나는 완성되는 것보다 깨지는 것이 좋다. 균열은 파괴가 아닌,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는 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마음이 기운다.



그러나 사유는 실체가 없어, 어느 순간 내 발목을 어느 한 지점에 묶어두고 좀처럼 놓아주질 않는다. 그럴 때면 가슴까지 차있던 잔잔한 나의 우울에 머리끝까지 잠겨, 위태로운 날도 있다. 나는 그 지점을 ‘의미’라는 말로 덮어두려 한다. 그것은 어쩌면 바닥을 뚫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숨구멍 같은 자기 합리화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다.


당장 이 지구 밖에만 나가도, 우주의 입장에서 고작 나 따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사소하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것이다. 그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허무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어디에 어떤 의미를 붙여도 괜찮다는 자유를 준다. 동시에 부여한 의미를 언제든 거둘 수 있는 자유 또한 허락한다. 그렇기에 어떤 것에 의미를 두면서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또한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내게 하루를 더 살아가게 할 이유가 된다.



결국 사유는 나를 구원하지도, 완전히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하루를 버티기 위해 붙잡는 미약한 불씨일 뿐이다. 나는 그 불씨를 따라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사유에 완성은 없다. 그저 끝없는 질문의 반복이다.

그러나 사유는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선물한다. 그 감각 하나면, 나에겐 충분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