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by YOZO

나는 스물일곱의 대학생이다. 얼마 전까지 조급함에 사로잡혀, 스스로 옥죄며 괴로워했다. 친구들의 취업과 결혼 소식이 내게는 유독 먼 이야기 같아서 더 그랬다.


초면에 자연스레 나이를 묻는 문화가 이토록 폭력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다. 내 나이를 들으면 곧 “그런데 왜 아직 대학생이세요?”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뭔가 내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나는 오랜 시간 방황했다.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방황한다고 전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마음속에 품으며,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공백을 해명하려 애쓰는 스스로를 보며, 나조차도 그 시간을 의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게 무엇보다 비참했다. 그 의심은 곧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왜 이렇게까지 초조한 걸까?

그 감정의 뿌리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그럴듯한 직업,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제때' 해내는 삶,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거기에 엄청난 반감을 가지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누구보다 그 기준 속에서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세상이 내게 ‘잘못 살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무 속이 상했다. 최선을 다해 버둥대며 살아온 스스로가 비참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허우적대며, 겨우 다른 사람들과 발을 맞춰 달린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그 사실 앞에서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차피 끝이 같다면, 이 치열한 비교와 증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그 순간, 세상의 엄격한 잣대로 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어차피 결국 모두 같은 종착지에 도달한다면, 적어도 이 삶은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리고 그 방황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선택은 도망치기 위해 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 동기가 결핍인지, 부모님의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열망이 있었는지를.


내가 나를 배워갔다.


나는 인정 욕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그 욕구의 존재를 인정하되, 이제 그것이 더 이상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내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누군가 보기에 내 삶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아는’ 한심한 모습일지 몰라도, 내겐 그 시간이 필요했다.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성공한 삶은 비교적 그 기준이 명확하다. 사회적 약속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좋은 삶은 다르다. 그 기준이 철저히 ‘나’에게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좋은 삶이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이다.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다. 비교적 좋은 선택과 덜 좋은 선택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선택은 늘 그 시점의 나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 내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선택들에 책임을 졌기에 나는 내가, 내 삶이 좋다. 나는 앞으로 더 겁 없이 선택하고, 더 과감하게 책임질 것이다.


나는 내게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