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혜 Oct 23. 2024

#2 은혜의 자서전

8~13세 (초등시절)


8~13세 (초등시절)



8세/

얼굴보다 큰 안경을 초등 1학년때부터 쓰 입학을 했었던 나,  고도난시 때문에  무척이나 두꺼운 렌즈의 안경으로 어릴 때부터 일찍 착용했어야만 했다.


거울에 비친 두꺼운 렌즈 안경을 착용한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쓴 안경이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기다란 안경줄까지 하고 다녀야 했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입학을 하고 반 친구들 중 안경착용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나 한 명뿐이었다.


반친구들은 자신들과 다른 렌즈 두꺼운 안경을 착용한 나를 외계인이라도 만난 듯 아주 신기해했다.

그런 놀림당하는 게 싫어 어느 날은 안경을 벗어 잘 보이는 척 선생님이 쓰신 글씨를 보려 칠판을 부랴부랴 눈에 힘을 주며 응시했었지만 불규칙한 각막의 굴곡으로 눈의 불편함만 컸을 뿐이었다.

ㅡ보란 듯이 벗었던 안경을 다시 착용하기에는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었기 참아보려 발악을 했었다. 꿋꿋이!!!


ㅡ현재는

고도난시로 인한 각막굴곡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원추각막까지 가졌지만

아직까지 시력 잃지 않고, 안경의 힘을 빌려 세상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인 것에 감사하며 은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11세/

3학년까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이사를 하면서 4학년때부터는 새로운 초등학교에 대한 적응기간이 내게는 필요했었다.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학 오게 되니  아니꼬운 시선으로 나를 보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시선이 거슬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게는 아무 일이 어나지 않았기에.

ㅡ아~  그 여자아이의 불편한 시선은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흘러 기며 학교생활을 해 나갔었다.


4학년 2학기 어느 날 하교하여 집으로 가고 있었던 나를

뒤에서 누군가가 밀쳐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지면서 한 주택 앞 주차금지로 세워둔 쇠간판에 오른쪽 무릎안쪽을 부딪히며 다치게 되었다.


그 아픈 중에도 나를 밀었던 사람을 알고 싶어 뒤를 쳐다보았더니 내가 전학 온 첫날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본 여자아이와 그 무리들이었고, 신나게들 낄낄거리며 자지러지게 비웃으며 내 곁을 지나갔다.

ㅡ난 그 다친 다리 아픈 순간 보다 나를 이유 없이 그렇게 괴롭히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비웃 그들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그렇게 그 무더운 여름 통깁스를 하며 반개월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고, 나를 업어서 등. 하교로 수고한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한 새 학교의 생활이었다.




병원에서의  통깁스 풀게 된 날

의사님 "여름인데도 깁스한 동안다리 관리를 아주 잘했구나, 수고 많았네", 라며

칭찬해 주시던 담당의사님의 말이 나를 아프게 했던 친구들부터  사과를 받은 것 같은 큰 위로가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은혜였었다.






13세/

6학년 방학기간 아침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고열과 두통. 퉁퉁 부어오르는 얼굴, 목을 숙이면 뻣뻣한 종합적 신체 통증들이 찾아왔다.


고열과 망치로 머리 여러 방향에서  내 리치는 듯한 통증이 시간마다 간격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집과 가까운 동네병원이 있다는 걸 아신 엄마는 119도 부르시지 않으시고 옷이 다 젖어가기까지 땀 흘리며 나를 업고 급히 병원을 오셨다.


집 앞에서는 아픈 증상의 질병만 알 수 있었을 뿐,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서 빨리 치료받으라고 권하셨다.


동네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큰 병원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아무리 내증상이 긴급적일지라도 순차적으로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던 응급실 상황이었다.


응급실안에서 난 나쁘지 않은 순서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웅크린 자세로 허리에 신경주사치료를 받게 되었다.

주사 후 잠을 자고 깨어났더니 내 옆자리에 3세 아기가

장이 꼬여 긴박한 순간 같아 보였지만 순차적으로 치료하고 있던 응급실이라 내 옆아기의 치료의 시간이 지연된 모습을 보고 있어야 했다.


순서가 밀린 아기는 결국눈을 감게 되었다.

옆자리의 있던 내가 그 아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기도뿐이었다.


내게 뇌수막염이라는 질병으로 극심한 통증이 있었으나 진단도, 치료도 빨랐기에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오는 장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 은혜였었고, 응급실에서의 빠른 순번으로 치료하여 생명에 이상 없었던 것에 또 한 번 감사할 수 있었던 은혜였었다.



이전 01화 #1 은혜의 자서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