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을 예약하면서 타이틀을 뭘로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처음엔 '오프보딩'으로 했다가 지웠다. 내가 파트리더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무슨 오프보딩이람. 그냥 '회고'라도 적어뒀다. 업무에서만 회고가 있을쏘냐 싶었다.
우리 팀은 회고 문화가 아예 없었다. 내가 팀장이었더라면 회고를 적극적으로 했을 텐데 우리 파트리더는 그만한 여력이 되질 못했다. 파트리더는 늘 대표님 때문에 바쁘고 지쳐있었다. 그가 말하길 본인은 '채팅봇'이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원래는 퇴사하기 바로 직전에 잡아 놓은 미팅이었다. 미팅 후 퇴사까지 텀이 좀 있으면 미팅 후에 서로 민망할까 봐 바로 퇴사 직전에 잡아놓은 거였는데 주말에 미팅건 때문에 스트레스받기 싫다고 미팅을 좀 앞당겼다.
"별 얘긴 아니고 제가 팀장이 다시 안 될 수도 있지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제가 리더로서 부족한 부분, 고쳤으면 하는 부분 같은 걸 L님의 시선에서 말씀을 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부작님이 보시기엔 사부작님은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데요?"
그는 이렇게 대화하곤 했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질문하면 항상 되물어 보곤 했었다. 그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리주저리 대답하다가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나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맨날 상처받는 줄만 알았지 내가 상처 주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도 상처를, 그것도 매우 많이 주는 사람이었다는 게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본인을 많이 싫어했었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물론 우리의 관계성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를 싫어한 건 아니었노라고 말했고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도 플랫폼 론칭할 때 내가 주말 동안 성심성의껏 본인을 서포트해 줬던 건에 대해서 많이 고마웠었다고 얘기해 줬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에 대한 나의 애정과 신뢰를 표현했는데 워낙 그동안 쌓여왔던 골이 깊어져 있던 탓에 실타래가 쉽게 풀리지 않았었나 보다.
그를 만났을 때 내가 팀장이었지만 헤어질 땐 그가 팀장이 되어있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소중한 첫 번째 팀원이었다. 그에게서 차분하게 소통하는 기술을 많이 배웠고,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문서 정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것도 배웠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흔히 회고에서 4L이니 KPT, 5F라는 회고 방법론이 있다(개인적으로 4L을 선호한다). 관계에서도 회고가 필요하다. 방법론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문제는 하고자 하는 의지인 것 같다. 중간중간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어떤 걸 기대하는지 서로 물어보고 공유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이탈을 막을 수 있다.
팀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댐이 어디에서 무너지는지 아느냐고. 아주 사소한 균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팀도 마찬가지이다. 팀도 아주 사소한 상처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런 사소한 관계성에서부터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회고를 퇴사 직전에서야 했는지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 꼭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떠난 후에서야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좋은 동료를 또 한 분 떠나보내며 업무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관계성 회고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