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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Nov 27. 2018

그러나 불행한 간호사들은  모두 서로 비슷하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한창 말을 하고 있는데 목이 메어온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강연장이 채워졌다. 아차, 싶어 잠시 숨을 머금었다. 더하다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내가 하고 있던 말은 "우리가 보통 암환자라고 하면, 항암 치료를 받고 그 약물로 인해 속이 울렁거려 구토를 할 수 있다 정도로 알고 있죠. 항암제로 인해 머리가 빠진 모습을 떠올리고요." "종양내과 간호사가 되니, 눈 앞에서 환자분이 휴지통을 부여잡고 더 이상 토해낼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와 같은 문장이었다. 임상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담당 간호사라는 역할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간호사'가 된다는 건, 한 의료진으로서 '실전에 투입'되는 거라고. 그런데, 왜 내 목이 메는가.


순간, 신입 간호사 시절 간호했던 그녀가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구토 방지제를 써도 계속 구역질을 하는 30대 초반의 그녀는 내 담당 환자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꼭 콜벨을 눌러 진통제와 구토 방지제를 같이 투약받길 원했던 말기 암환자. 암병동에서 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나로선, 약으로도 잘 조절되지 않는 통증과 속 울렁거림을 호소하는 그녀를 보며 당혹감을 느꼈었다. 그보다 더 이상 힘들어할 힘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처방된 약물을 주입한 후, 봉투에 얼굴을 묻은 채 헛구역질을 하는 그녀 옆에서 휴지를 뽑아 들어 건넸다. 뒤늦게 들어온 그녀의 남편이 내게 '괜찮다'며 그녀 옆자리를 지켰다.      


임상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목메임 사태는 종종 벌어진다. 내가 간호했던 환자를 바라보며 느꼈던 연민과 동정심이 건드려져서 그렇다. 내 눈앞에 있었던 한 '사람'의 환자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다 보면 이따금씩 이런 사달이 난다. 그의 처지가 너무 딱해서, 그녀의 눈물이 안쓰러워서, 오랜 기간 간호했던 환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등등. 간호사와 환자는 철저한 타인이지만, 장기간 입원한 환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겐 간호사는 꽤 가까운 타인이 된다. 때론, 고충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때론, 오래간만에 찾아온 소소한 웃음을 나눈다. 그 진득한 교감이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간호사로 살아온 시간을 지탱해줄 만큼 내겐 중요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냥 그저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 간호를 받는 시간만큼은 담당 환자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냥' 간호사가 되지 않기 위한 첫 단계로 정확한 환자 파악이 필수였다. 이 환자가 왜 병원에 입원해있고, 이전에 어떤 질병력이 있는지. 나아가 지금 호소하는 증상과 입원해있는 동안 어떤 치료가 이루어질 것이며 따라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케어해야 하는지 등등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했다. 제대로 된 환자 파악 없이 간호를 한다는 것은, 허술하거나 엉성한 간호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보통 11명에서 14명의 환자를 맡아서 간호했는데, 소위 간단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형병원이다 보니 환자 중증도가 늘 높았기 때문이다. 간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환자 파악에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출근 시간은 정해진 시각보다 한두 시간씩 앞당겼다. 입사 후 약 1년여간은 미리 병원 도서관에 가서 환자 파악을 하고 출근했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까지 하냐.'라고 했지만 담당 환자들에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 간호를 해야 내 마음이 덜 불편했기에, 힘을 냈다.   

 

하지만 간호사로 살아가며 신체적, 감정적 피로감이 꾸준히 적립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간호를 하고 싶던 바람이 나를 오히려 빠르게 소진시켰다. 애초에 약 13명의 환자들에게 '최선'의 간호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매번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환자의 임종을 애도하고, 그의 가족을 위로하는 일. 찰랑 차고 넘치던 감정이 점차 메말랐다. 기술적인 간호만 기계처럼 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여유가 없었다. "네, 그래서 이렇다는 거죠?" 라며 중간에 말을 끊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때론 눈을 맞추지 않고 해야 할 처치만 빠르게 하고 뒤돌아섰다. 그마저도 힘에 부칠 때가 있었다. 왜 밥도 못 먹고, 왜 출퇴근도 제 때 못하고, 왜 낮밤을 하루 걸러 바꿔가며 간호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답답함이 들기 시작했다. 병원 안에서 내 존재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저 소모되면 언제든지 바꾸면 되는, 배터리 같은 존재인가?'


입원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은 시기엔 간호사 모두가 소진된 상태로 예민한 채 일했다. 동료의 작은 실수도 짜증으로 돌아왔다. 환자의 고통도 짜증으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 서부터 더는 '좋은'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선 그저 욕심에 가까운 이상이란 걸 인정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적당히' 일하면서 내 몸도 감정도 아끼는 게 나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는 항상, 왜 이런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걸까. 왜 이 모든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까.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간호를 못하는 현실이 왜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간호사가 떠나는 게 답일까. 적지 않은 간호사들이 임상을 떠날 때 '질렸다'라고 표현한다. 시간이 지나도 업무 환경이 별반 달라지지 않다는 걸 몸소 느낀 후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를 읽고 한 간호사가 이런 글을 썼다.


업무량이 너무 많아 기계적으로 일을 쳐내듯 영혼 없이 해내야 하는 상황.
너무 안타깝습니다. 간호 일지에 기록할 수 없는, 마음을 써야 할 수 있는 일.
라인 정리, 옷 갈아입혀 주기, 산소 줄에 피부가 자극되지 않게 폼 대주고 거즈 감아주기,
보호자 마음 다독여주기. 그런 부분까지 모두 해 줄 수 있는 근무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화장실에도 못 가고 소변을 참다 보니 방광염 생기고. 이런 현실입니다. 여기에 요즘 간호사들에게 막말하고 함부로 하시는 분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힘이 빠지고 화가 납니다. 이렇게 고생하며 욕까지 먹으며 임상에 남아 있는 게 맞는 건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임상을 떠나지 못하는 건,
나의 작은 배려에 고마워해 주시고
감사했다며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다시 힘내서 일해봅니다.


그럼에도, '아직' 임상에 있는 간호사들은 '고맙다', '감사했다'는 어느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대어 힘을 낸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이따금씩 내 마음을 써서 간호했던 이들의, 고마웠다는 인사가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귀하게 여겨지는 경험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환자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간호할 수 없었다. 앞서 한 간호사가 쓴 글에서 '그런 부분'이라고 표현된 배려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꼭 해야만 하는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달까. 여력이 없었다는 말로 모든 게 사해질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임상에 있는 수많은 간호사들이 보람이 아닌 죄책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속에 있는 '나이팅게일'을 죽여야만 그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게 수 없이 많은 나이팅게일이 죽어가고 있다. 차라리 '간호하는 기계'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행복한 간호사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한 간호사들은 모두 서로
비슷하다.

대한민국 간호사들에게 왜 행복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모두 서로 비슷한 이유를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행복을 찾으며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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