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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15. 2018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다

새벽녘, 응급실을 통해 유방암 환자가 입원했다. 그녀가 응급실에 온 이유는 40도에 다다른 고열 때문이었다. 악성 종양은 유방 조직을 시작으로 곳곳에 전이된 상태였고, 혈액검사와 CT 검사를 진행해 본 결과 간농양에 의한 염증 소견이 발견되었다. 당분간은 항생제를 투약하며 치료 반응을 지켜봐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에게 항생제를 투약하려고 침상 옆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팔을 보니, 꽂혀

있던 정맥주사 부위가 약간 불그스름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럴 경우 보통 주사를 교체해야만 하는데, 그녀의 혈관은 주사를 새로 삽입하기 부담스러울 만큼 얇아진 상태였다. 겨우 혈관을 찾아 주사를 삽입하더라도 몇 차례 약물이 주입되고 나면 다시 발적이 생기곤 했다. 이 과정을 이미 수차례 반복한 그녀는 주사 부위에 늘 예민한 상태였다.


주사가 삽입된 지금의 혈관으로는 더 이상 약물 투약을 할 수 없어 그녀의 팔에서 정맥주사를 제거했다. 다시 주사를 삽입해야 한다는 미안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알리며 알코올 솜으로 잠시 지혈을 하던 중이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환자분이 어두운 낯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예측하지 못한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잠시 여유가 있어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 앉았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퇴원하면 무슨 소용이죠. 열나면 응급실 오고 또 입원하고 반복되는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이 상태로 계속 사는 게 너무 힘드네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다 그만하고 그냥 편하게 살다 갈 순 없는 걸까요. 제가 치료를 포기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동시에 눈물을 삼키려 애를 쓰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환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간호사로서 일하다 보면 환자와 내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나 역시도 간호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눈앞의 환자를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치료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삶을 정말 포기하고 싶은 걸까.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고 위로받고 싶은 걸까. 치료를 결정하는 최종 주체는 당사자인 환자가 결정해야 하는 게 맞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포기하겠다는 선택마저 그저 존중해주면 되는 일인 걸까.’ 


여러 개의 질문이 머릿속을 스치는 동안,

“만약 선생님 어머니가 제 어머니처럼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하신다면 어떻게 하

시겠어요?”

환자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그녀의 따님이,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당신이 나의 엄마라면, 과연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골똘히 생각에 빠진 나를 기다려주었다.


“치료에 있어서 최종 결정권은 환자분께 있는 게 맞아요. 냉정하게 말해서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가 언젠가 찾아올 거예요.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게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는 치료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상황도 많거든요. 주사 때문에 아픈 것, 입원 중 느끼는 답답함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부분을 조금 내려두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지금의 소중함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딸이 내게 물어 온, ‘당신이 나의 엄마라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진심 어린 대답이었다. 온전한 일상을 회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만큼은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한 내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눌러 담으며 내 눈가 또한 뜨거워졌다. 환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이를 들키지 않으려 눈물을 머금었다.


젖어 있는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한 채로,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주었다. 그때야 굳어있던 그녀의 표정이 봄바람에 서서히 눈이 녹아내리듯 조금씩 풀렸다. 어느덧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에 마음이 놓인 나 또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환자분을 포함한 누구나가 유한한 삶을 산다. 그래서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아직은 걸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상에 감사할 수 있고 또 감사하게 느껴야만 한다. 죽고 난 후에는 아니, 죽음이 몰려드는 순간서부터는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곳에서 숱하게 죽음을 경험하며 삶의 유한함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 주어진 삶을 충분히 누리다가 갈 수 있도록, 눈앞에 놓인 고통과 시련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우리는 거둘 수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눈물이나 불평, 불만, 좌절 등으로 보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게 우리 ‘삶’이다. 감사할 수 있는 무엇, 재미있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무엇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이 언제까지 일지 알 수 없으니까.


나의 삶도 그대의 삶도 유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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