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둘째가 행복했던 이유
어제 아침에 차수리를 맡겼다. 1박 2일이 걸린다는데 첫째는 학교, 둘째는 어린이집을 보내는 상황에 아이둘 등하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둘째를 하루 어린이집 안 보내기로 했다. 자차 없이 둘째를 하원하기 위해 첫째를 데리고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왕복 30분 거리를 오가는 것보다 하루종일 둘째를 끼고 있는 게 엄마인 내가 더 편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점순이가 '왜 나는 학교 가야하는데 꽁꿀이는 안 보내고... 억울해!' 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렸지만 아빠가 오늘 학교 갔다와서 엄마랑 빵집에 가서 맛있는 빵을 고르기로 하고서 기분이 다 풀렸다.
그리하여 어제, 언니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와서 꽁꿀이만 데리고 일단 차를 맡기로 카센터로 향했다.
차를 맡겨두고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이사오기 전 동네에서 가끔 갔던 브런치 가게에 갔다. 점순이와 단둘이 카페에 간 적은 몇 번 있어도 꽁꿀이는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엄마와 단둘이가 신난 건지 조금 성장한 건지 그저 기분이 좋은 꽁꿀이이다.
아이는 집에서 가져온 캐릭터 인형을 가지고 놀고, 나는 컬러링 북을 꺼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색칠을 시작하려는데 음식이 나왔다 하하.
샥슈카에그와 치아바타였나? 하여튼 이름이 좀 어려웠고 허브향이 강하게 하는 음식이었으나 맛이 좋아서 엄마는 커피 한 잔 꽁꿀이는 쥬스 한 잔과 치아바타 빵을 폭풍 흡입했다. 커피는 역시... 남이 타주는 커피가 진리!
카페 구석구석 포토스팟이 많아서 (내 눈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를 모델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데다 주문하는 곳과 공간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 그야말로 테이블을 전세 내고 색연필, 컬러링북, 장난감 등을 늘어놓고 마음껏 놀았다.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꽁꿀이는 춤도 실컷 추고, 가져간 그림을 오려서 퍼즐로 만들어서 다시 완성하는 놀이를 수십 번 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아이와 외출할 땐 필수 ㅋ) 테이블을 싹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지하철을 탈까 고민도 없이 바로 온천천으로 내려와서 걷기 시작했다. 저녁시간이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얼른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겠지만 날은 따뜻하고 아이는 즐겁고 엄마인 나도 즐겁고... 우리는 실컷 걷고 놀고 햇볕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발을 지압할 수 있는 돌길을 보면서는 이게 하트라고 알려준다. 아 맞네, 하트였구나. 길을 걷다보면 나는 주로 아파트나 새로생긴 가게를 쳐다보는데 아이는 자연물에 집중한다. 똑같은 풍경을 보는데도 이렇게 느끼는 게 다르다니..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부러웠고 이렇게 내가 나이들어가나? 속세의 인간이 되어가나? (언제 아닌 적 있었냐며 ㅋㅋ)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그냥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야겠지.
한 코스 쯤 걷다가 털썩 주저앉아서는 걷기가 싫단다. 지구력 없는 둘째님이 그럴 줄 알았기에 딱히 놀랍지는 않았고 급할 거 없고 배도 부르고 길도 익숙한 곳이라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쉬엄쉬엄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걸을 때는 힘들다던 아이가 뛸 때는 즐겁게 뛰는 걸 보면 확실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의 문제인 듯 하다.
집근처 지하철역까지 다 와서 어린이 운동기구를 보더니 몇 개 해보고 맞은편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한번 건너고 그대로 집으로 갈 줄 알았건만 '건짐다리' 라며 (징검다리라고 수정해줬는데 바로 수정이 잘 안 되는 일곱 살 ㅋㅋ) 계속 걷자고 한다. 점순이처럼 혼자 건널 줄 알면 백번이라도 기다려줄 수 있지만 꼭 엄마랑 손잡고 걸어야겠다는 꽁딩가리 (꽁꿀이의 또다른 별명) 때문에 늙은 엄마도 징검다리를 수십번 왕복했다.
아침 10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는데 차를 맡기고 브런치를 먹고 다시 집에 도착하니 2시. 조금 정리하고 쉬다보니 점순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오후 3시 30분, 다시 만난 점꽁자매는 마치 몇 달 만에 상봉한 아이들처럼 그리워했다. 너네 오늘 8시반에 헤어졌잖아.
그날 하루 어린이집에 안 간 꽁꿀이가 부러웠던 점순이를 위해 집에서 조금 걸어가야 있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다시 온천천으로 갔다. 잠깐 뛰어놀다가 올 생각이었는데 딱히 깨끗하지 않은 물에 새가 여러 종류 떠다니고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점순이가 홀딱 빠져서는 새를 보기 위해 징검다리를 또 수십번 왕복했다. (다행히 지 혼자 다녔다 ㅋ)
키도 작고 몸도 둔한 꽁꿀이에 비해 또래보다는 체구가 작은 편이지만 운동이라면 자신있는 숲반 출신 점순이는 어린이 놀이기구는 물론이고 어른 철봉과 운동기구까지 섭렵했다. 30분쯤 놀고나서 집에 가자고 설득했으나 새들이 아직 집에 안 갔다며 절대 안 된다 해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뛰어다니다가 아이가 피곤해서 넘어질 뻔 하고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점순이 하교 - 간식 먹고 학교 준비물 챙기고 - 꽁꿀이 어린이집으로 출발 - 어린이집 도착 - 다시 집 도착까지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데 꽁꿀이를 하원할 필요가 없다보니 아이들과 야외에서 실컷 놀아도 저녁 시간이 넉넉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꽁꿀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니 언니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실컷 안아주고 이뻐해줄 수 있었고 꽁꿀이도 엄마에게 무한애교를 발사하며 행복해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서 산책하며 놀며 자연을 보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린 어른을 욕하기도 하면서 (여기 버리면 안돼~) 천천히 집으로 오는 길도 참 좋았다.
물론 어젯밤 너무 피곤하여 빨래 설거지 그대로 거실에 두고 눕자마자 잠들어버렸지만, 오늘 낮에 또 할 수 있으니 괜찮았다. 길지 않은 휴직생활, 아이들이 어린 시간을 더 흠뻑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