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그러니까 이번주 수요일, 집근처 작은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 모임에 쓸 책을 빌리려고 탄력근무시간을 써서 조금 일찍 퇴근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4시라 조용히 혼자 앉아서 블로그 글을 읽고 있는데 누가 운전석 유리창에서 인사를 해서 보니 어머님이셨다. 마침 둘째를 데리러 나가는 길에 내 차를 보신 모양이다. 내려서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유치원 하원버스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해서 이미 아이와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았으면 내가 미리 나올 것을... 우리가 늦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주차장에 있었는데 길에서 차량도 남은 아이들도 기다리게 해서 본의 아니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내리자마자 내 품에 쏘옥 안긴다. 늘 할머니가 하원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늘은 엄마도 나와있으니 좋았나보다. 그래서 첫째도 늘, 일찍 등원해도 늦게 하원해도 엄마랑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겠지. 할머니의 사랑도 크지만 역시나 아이에겐 엄마가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어머님께 휴식시간도 좀 드릴 겸, 아이도 도서관 구경 시켜줄 겸, "꽁꿀아, 엄마랑 같이 도서관 갈래?" 했더니 "응" 하면서 얼른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그리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데다 우리집 위치가 중심가에서 좀 떨어져있다보니 어디를 갈 때 항상 차를 가져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오히려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집근처는 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꽁꿀이가 아파트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어린이집 선생님,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만들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었는데 다섯살 되고서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이 동네에 3년 넘게 살면서 평일에 7시까지 열고 토요일에도 하는데 한번도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이 없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다.
둘째는 발달도 느리고 말도 아직 잘 못하다보니 뭔가를 체험해주고 나들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이젠 자기 의사표현도 잘하고 지난주 달빛걷기에선 산길을 1시간 넘게도 잘 걷는 걸 보니 정말 훌쩍 아이가 자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날도 도서관까지 씩씩하게 잘 걸어갔다. 동네도서관이라 아주 작지만 아이들이 앉아서 책 읽기에는 좁지 않다. 아이는 유아 땅콩책상에서 책도 읽고 종이꽃도 만들고 색칠놀이도 했다. 동네도서관이라 그런지 사서선생님이 동화책을 가져와 아이에게 읽어주고 말도 걸어주시고 만들기 재료도 내어주며 아이를 같이 봐주셨다. 아이를 키울 땐 이런 작은 배려가 참 크게 느껴진다. 원래는 내 책을 보러 온 거여서 전혀 아이와 놀아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더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한 시간 넘게 놀고 필요한 책을 빌리고 나와서 미리내 행복마을 벽화 앞에서 동물 이름 맞히기 놀이를 했다.
하나의 동물을 보고 아이는 양이라고 하고 나는 유니콘이라고 해서 서로 장난을 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양일 수도 유니콘일 수도 있는 그림인데 그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렇게 재밌게 몇 분을 논 것을 보면 역시 엄마의 몸을 던져서 같이 놀아주는 게 발달에 좋다는 장난감 백 개보다 더 좋은 거다. 이제 다시 걸어서 첫째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점순이는 흙산에서 놀고 있었고 꽁꿀이도 언니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함께 놀았다. 오늘도 잘 놀았다며, 소풍 가서 너무 좋아했다고 선생님이 얘기해주셨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어떻게 하면 똑같이 사랑을 주면서 키울까' 라는 지점에서 항상 갈등한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아이는 21개월, 두 돌도 안 된 시기였기에 무조건 첫째 위주로 모든 것을 해주려고 애썼다. 밤잠 잘 때도 엄마는 첫째 차지일 때가 많았고 둘째는 아빠나 할머니와 함께 재웠고 둘째가 좀 크기 전까지는 아이 하나만 데리고 외출할 일이 있으면 늘 첫째를 데리고 나갔다. 첫째가 큰 아이라서이기도 했지만 점순이는 모든 면에서 발달도 이해도 언어도 빨랐기 때문에 데리고 나가도 부모가 별로 힘들지 않아서인 것도 크게 작용했다.
꽁꿀이가 어느 순간부터 그걸 눈치로 알아챘는지 주말에 나와 남편이 어디갈까 고민하는 대화를 하고 있으면 자기만 빼고 또 어디를 가나 싶어서 먼저 옷을 꺼내입고 신발까지 신고 현관에서 대기를 한다. 그럴 때 보면 우습기도 하고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언니를 이유없이 때리거나 고집부리는 걸 보면 얘가 또 왜이러나, 왜 첫째처럼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나 싶은 마음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둘째에겐 딱히 뭘 더 신경써준다거나 마음을 풀어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첫째는 육아서 봐 가며 하나하나 챙겨서 키우지만 둘째부터는 엄마의 본능으로, 그냥 대충 키우게 된다는 걸 (흔히들 둘째는 발로 키운다고 한다) 아이가 둘인 엄마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꽁꿀이의 올해 유치원 여름방학 일주일간, 언니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롯이 꽁꿀이와 엄마만의 시간을 보냈었다. 너무 더운 여름이었다보니 물놀이장에 가거나 아이들 놀이시설이 있는 식당에 가거나 키즈카페나 체험관에 가서 논 게 대부분이었다. 뭔가 특별한 걸 하지도 않았고 집에 있는 동안은 아이는 그냥 놀이방에서 인형놀이, 역할놀이를 하며 놀고 나는 거실에서 밥 차려주고 책읽고 그냥 조용히 쉬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유치원에 등원한지 삼사일 쯤 되던 날 하원 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어머니, 꽁꿀이가 방학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전보다 유치원에서 말도 엄청 많이 하고
친구들이랑도 어울려서 잘 놀아요. 그전에는 한번씩 활동도
잘 안 하려하고 컨디션 나쁘면 무조건 원장실에 가서
원장선생님께 안기려고만 했는데
요즘은 원장실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요.
방학 일주일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 방학에 점심 챙겨줄 게 부담스럽고 매일 뭘하며 보내지 고민스럽기만 했는데, 아이에겐 그 엄마와 단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참 소중한 거였나보다 싶었다. 나들이를 가든 집에서 놀든 책을 읽어주든 점순이가 늘 앞서고 똑똑하다는 생각에 꽁꿀이에게는 신경을 쏟지 못해 미안함 마음도 함께 들었다. 둘째에게도 엄마를 오롯이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언니와 비교되지 않고 자신의 존재만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건데, 첫째를 키워봤으니 '저때는 다 저렇더라' 라는 선입견으로 항상 아이를 방치 아닌 방치해둔 게 미안해졌다. 앞으로도 가끔씩, 이렇게 첫째든 둘째든 한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외출을 하자고 마음먹어본다.
*2019년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편집해서 발행한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이라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외출하던 사진을 보니 그때가 그립습니다. 얼른 다시 아이손을 잡고 신나게 외출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