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주에 첫째와 남편이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갈 예정이었다. 라푼젤과 엘사를 좋아하는 첫째는 좀처럼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하지 않아서 머리카락 이쁘게 자르면 스티커북 하나를 사주겠다고 아빠가 첫째에게 당근을 던졌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둘째는 '나도나도! 나도 같이 가고싶다고. 나도 스티커북 사달라고~' 를 연발했고 이에 점꽁대디는 '그러면 매일 아빠 옆에 붙어서 자면 너도 사주지~' 라며 회유했더니 요 며칠째 아빠 옆에 찰싹 붙어서 밤잠을 잤다. 이런 가벼운 자본주의 사랑이라고 놀려댔더니 남편왈,
" 자본주의 사랑이면 어떻고 공산주의 사랑이면 어떠냐?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자는 뽀송뽀송한 꽁꿀이를 보면 너무 행복한데...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니 자본주의 사랑 아니다 뭐. "
이런 궤변 아닌 궤변을 늘어놓는다.
2. 오늘 아침에 어제 마트에 가서 사온 아르헨티나 산 생새우를 쪄서 식탁에 올려주었더니 꽁꿀이가 아주 신나게 먹는다. 껍질을 까주니 한참을 먹다가 하는 말,
" 다 먹었어, 꼬리만 남았네.
꼬리는 아빠 줄거야. "
지난번에 새우를 까주면서 점꽁대디가 까고남은 꼬리를 먹어치웠더니 꽁꿀이 눈엔 아빠는 새우꼬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였나보다. 내가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야겠다, 우리도 좋은 거 같이 먹자고 했더니 딸바보 점꽁대디 왈,
" 꼬리라도 아빠 먹으라고 생각하고 챙겨주는 게 어디냐? 난 꼬리만 먹을래. 꼬리가 뭐가 영양가가 많아서 몸에 좋대."
꽁꿀이는 여름에는 포도를 먹고나서 껍질을 아빠에게 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빠는 포도껍질 좋아해"
"정말? 너 먹기 싫어서 주는 거 아니고?"
"아니야, 아빠가 좋아해서 주는 거라고!"
"그래, 아빠는 포도껍질만 먹어도 행복하다."
흠... 이쯤 되면 딸바보가 아니라 그냥 바보인 듯 하다.
3. 금요일 낮, 마스크로 무장한 채 꽁꿀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더니 아이를 보고 알아보는 동네주민분들이 꽤 있다. 어라? 나는 모르는 분들인데 평소에 어머님이 둘째가 하원한 뒤에 자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다보니 그새 유명인사가 되었나보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하나같이 둘째가 할머니 애를 많이 먹인다고, 그럼에도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쫓아다니며 봐주신다고 얘기하신다.
다시 아파트 입구쪽으로 걸어가다가 단지내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과 마주쳤다. 4시쯤이라 아이들 하원시간에 차량운행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거의 일 년만에 만난 둘째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역시나 할머니 안부를 물으신다.
할머니는 잘 지내시죠? 꽁꿀이 할머니 뵙고싶네요.
분명 두 달 가까이 어머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아를 하고 있는데 곳곳에서 드러나는 어머님의 그림자란...^^ 그만큼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신 어머니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4. 아이들과 남편이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나란히 옆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자꾸 첫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편 머리를 손질하던 원장님이 '아버님, 이러시면 아버님 머리가 이상해집니다' 라며 주의를 준다. 그러자 남편왈,
" 어차피 내 머리는 이러나 저러나 똑같고
나는 우리 딸 머리가 너무 궁금한데 거울 사이에 미용실 광고판 때문에 안 보여요."
이러나 저러나 자기는 똑같다는 거 알...았...구나?
역시 사람이 현실파악이 빨라야지...하하.
딸들의 애교에 안돼요 돼요 돼요 가 되어버리는 남편을 보면 저 사람이 평소 회사에서 늘 단호박으로 잘 거절하고 자기 영역을 잘 지키는 사람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이다. 특히나 그의 둘째 사랑은 넘쳐흘러서 내 옆에서 자고 있으면 아이를 뺏다시피 자기 자리 옆으로 데려가서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과자를 줄때는 꼭 '아빠 좋아 엄마 좋아?' 라고 묻고 둘째의 입에서 '아빠 좋아'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약을 올린다. 우리 둘째는 센스 있게 내 눈치를 보면서 '엄마는 내일 좋아할게, 지금은 아빠 좋아하는 걸로 하자' 라며 우리 모두를 까르르 웃게 만든다.
둘째 아이에게 첫째한테만큼 밀도 있는 육아를 하지도 않고, 수유텀에 맞춰 수유를 하지도 않았고 이유식을 제 날짜에 먹이지도 못했지만 한 번씩 보는데 언제 이렇게 컸지 싶을 정도로 아이는 쑥쑥 잘 자라주었다. 둘째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우리는 아이의 개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더 겸손해졌고 공공장소에서 마구 돌아다니는 아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이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둘째의 번잡스러움을 파악하고 둘째가 세 돌 될 때까지는 둘째를 데리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꼭 함께 나가야 할 땐 부모 중 한 명이 밀착케어를 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라지만, 첫째를 키울 때는 그래도 이런 부분은 내 뜻대로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도 했다면 둘째 아이는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할 수 없게 아주 자유로운 영혼으로 팔팔 살아숨쉬고 있다. 그래, 자유롭게 너의 삶을 사는 게 네가 할 가장 큰 일이지, 고마워 둘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