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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마운틴 Apr 09. 2021

둘째의 변심

그저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토요일엔 점순이네 친구집에서 내가 아이 둘을 다 데리고 놀아준 만큼, 일요일엔 점꽁대디가 점순이를 데리고 라이언킹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다.



점꽁마미 : 점순아, 오늘은 아빠랑 라이언킹 보러 가면 돼.

점순이 : 왜? 오늘은 엄마랑 안 가고 아빠랑 가는 거야?

아... 어제 우리가 **이네 집에 가서 물놀이하는 동안 아빠 혼자 쉬었으니까 오늘은 엄마가 혼자 쉬는 거구나. 알았어! 나 아빠랑 영화 보는 거 좋아.



어느 집 딸인지 야무지게 말이 참 많다^^


이리하여 점순이는 12시쯤 점심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아빠랑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걸 보고 벌~써 눈치를 챈 꽁꿀이가 '나도 갈거야, 언니가 집에 있어!' 라며 옷을 입고 신발까지 신고 문앞에서 대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본 점꽁대디가 그럼 그냥 꽁꿀이까지 같이 데리고 가서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나도 알았다고 했는데 뭔가 계속 찜찜하다.


영화보다가 갑자기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꽁꿀이가 떼쓰면 아빠가 감당이 안될건데 어떡하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생각과 걱정은 고이 접어두고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어야만 했는데...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극장까지만 같이 가고 나는 극장 밖에서 대기하고 셋이서 영화를 보고 나오기로 했다.



앵그리버드 포스터앞에서 손잡고 사진도 찍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화관 바로앞까지 갔다. 이제 엄마는 밖에서 기다릴게, 잘보고와~ 하면서 손을 흔들려는데 꽁꿀이가 자기는 영화보기가 싫고 엄마랑 있겠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 : 아니 아까 엄마는 안 가고 아빠만 간다고 할 땐 아빠 따라 영화보러 갈거라고 그러더니 너 왜이러니?

아빠 : 아빠랑 같이 영화보러 가자. 너 좋아하는 라이언킹이야.



아무리 설득해도 결국은 엄마 곁에 있겠다는 둘째님 때문에 난 가방속에 챙겨온 책을 한 자도 읽지 못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두 시간 동안 '독,박,육,아'의 신세계로 들어가버렸다. 꽁꿀이를 데리고 차를 빼서 근처 키즈카페를 갈까 그냥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서 있을까 고민을 했다. 흠... 또 다시 생각해보니 주차권을 내가 갖고 있네? 아, 망... 이건 뭐 꼼짝없이 이 근처에서 두 시간을 떼워야 할 상황인 거다. 

일단 건물밖으로 나가니 버섯모양의 조형물이 있어서 거기서 한 이십분 놀았다. 같은 건물안에 키즈카페가 있긴 했는데 2시간에 11000원인데 규모가 작은 곳이라 왠지 가성비가 끌리지 않았다. (여기라도 갔어야 하는 것을...ㅋ 갑자기 돈이 아까운 아줌마 정신으로)

그래서 발걸음은 다시 육교 건너 온천천으로 향했다.  




2시쯤, 날이 한참 더울 때였지만 물가라서 바람은 선선했다. 좋아하는 모모스카페가 근처이긴 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면 십분도 편히 못 앉아있을 것이라 결국 가지 않고 그저 산책로를 뛰어다니며 아이하고싶은 대로 시간을 보냈다.



나오려는데 모래놀이에 심취한 너, 엉덩이랑 손발이 흙색이 되었다지. 거기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지하철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와서 육교를 건너 영화관 건물로 왔다. 다섯살짜리 조금만 힘들어도 '안아줘' 를 무한반복하다니... 그럼에도 둘째라 그런 건지 쪼꼬미라 그런 건지 그저 귀여워서 안아줬다. 


다시 버섯송이와 놀다가 마지막은 풀을 갑자기 뽑는다. (환경훼손 미안해요) 내가 볼 틈도 없이 갑자기 뽑아버린 풀을 보고는 '이거 배추 같아~' 라고 해맑게 말한다. 





사실 처음에 꽁꿀이가 나랑 있게 되었을 때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어제 그리 애둘 데리고 아이친구네집에서 혼자 고생했는데 오늘은 애들이랑 남편은 극장에 넣어놓고 혼자 읽을 거라고 책도 가져왔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긍정적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래, 우리 꽁꿀이가 엄마 방학 마지막날인 줄 알고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구나, 늘 언니한테 밀려서 엄마랑 있는 시간이 적었는데 너도 엄마랑 있고 싶었구나, 라고.

개학 앞두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많았는데 (내일부터 또 일찍 일어나 점순이는 얼른 데리고 나가야하고 꽁꿀이는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유치원차 잘 타야할텐데... 하는 마음) 앞날에 대한 걱정 따위 없이 온천천에서 해맑게 노는 꽁꿀이를 보니 그 순간만큼은 나도 같이 마음이 깔끔해졌다. 또 개학하고 일상에 치여서 살다보면 아이의 작은 미소도 놓치면서 살 텐데, 엄마가 행복한 시간을 연장시켜주기 위해서 굳이굳이 상영관 바로 앞에서 아빠 손을 뿌리치고 나온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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