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아이들 하원후, 어머님과 나, 점꽁자매까지 모두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아동병원으로 갔다. 목요일에 어머님이 이모님 댁 과수원에 가서 한 달 넘게 비울 예정이라 어머님 계실 때 다 같이 가서 예방접종을 하려고 (+올해 처음 만 65세 무료접종을 맞게 된 어머님도 접종해주는 병원이라야 해서) 날을 잡았다. 조금 일찍 점순이를 데리러 갔는데 평소엔 집에 안 오려고 실랑이하던 아이가 이 날은 독감접종이라 했더니 "응, 친구들 많이 맞았어, 나도 맞으러 갈 거야!" 라며 가방을 챙기고 선생님께 인사하고 얼른 나왔다.
병원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은 많았지만 독감접종은 우선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줘서 가자마자 예진표를 작성하고 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했다. 점순이가 여섯 살 언니답게 혼자 들어가서 씩씩하게 맞고 나왔는데 문제는 꽁꿀이이다.
여름에 이 병원에 와서 자신이 기억하는 생애 최초 링거를 한 시간 내내 울면서 맞은 기억이 났는지 간호사 선생님 (바로 그때 달래주고 사탕을 주셨던 그 분) 을 보자마자 도망을 간다. 어머님과 내가 붙잡으려 하니까 나한테는 아예 오지도 않고 '주사 맞아야 안 아프지' 라고 얘기하는 할머니 말은 들은 체 만 체, 할머니 옆에 들러붙어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그때 작은 통에서 츄파츕스 하나를 꺼내서 꽁꿀이 입에 물려주자, 그제서야 조금 뾰로통한 표정으로 독감주사를 맞았다.
문제는 점순이었다. 자기는 사탕을 안 받고도 잘 맞았는데, 떼쓰고 울고 불고 해서 사탕을 득템 해낸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을 것이다.
늘 이런 식이지. 꽁꿀이는 맨날 누워서 떼쓰고 징징거리면 어른들이 해주잖아.
점순이가 속상해하길래 간호사 이모한테 가서 사탕 하나 주세요~ 하고 받아오라니 부끄러워서 못 하겠다, 안 주면 어떡하냐며 여전히 부은 얼굴이다. '점순이가 간호사 선생님한테 가서 저는 독감접종 잘 맞았으니까 저도 사탕 하나 주세요~ 라고 하면 주실 거야'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얘기하자 그제서야 쭈뼛쭈뼛 간호사 선생님께 가서 사탕 하나를 받아와서 먹고는 자매의 행복한 독감접종이 끝이 났다.
2. 새 옷을 살 때
계절이 바뀌고 자매들의 가을 겨울 옷을 살 때가 다가왔다. 점꽁맘은 연년생 자매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옷이나 용품을 살 때 금전적으로도 절약할 수 있고 육아용품을 보관하는 기간도 짧아서 공간도 아낄 수 있다. 꽁꿀이 두 돌 전에는 둘째를 위해서는 새로 옷을 사준 적이 없이 내내 언니가 입던 것 쓰던 것을 썼고 (기저귀 말고는 산 게 없었다) 둘째 출산선물로 들어온 아이옷도 다시 백화점에 가서 첫째 것으로 바꾸었다. 이 이야기를 하니 그때 오신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꽁꿀이 엄마, 꽁꿀이 친엄마 맞죠? 젖 잘 나오는 거 보니까 맞는데...^^' 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날이 되면 그 날이 어떤 날인지 아는 점순이는 선물을 받고 모르는 꽁꿀이는 언니가 가지고 놀던 걸 가지고 놀고, 이런 식이 세 살 봄까지는 통했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옷이나 신발, 장난감을 사 오면 점순이보다 꽁꿀이가 먼저 튀어나와서 "내꺼야!" 를 외치기 시작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에게 뺏긴 적은 많아도 자기껄 잘 챙기지는 못하는 순둥이었고 네 살 때까지 '내꺼야' 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둘째는 첫째보다 전반적인 발달이 늦은 데다 첫째에 비해 할머니와 단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고 할머니는 아이가 말로 요구하기 전에 다 해주시다 보니 말문도 늦게 트여 두 돌에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엄마, 아빠, 할머니, 추워, 더워' 정도의 간단한 거였다. 그러던 둘째가 '내꺼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뭐만 새로운 게 생겨도 '내꺼야 내꺼야'를 외치기 시작했다.
언니만 새 옷을 사주면 엉엉 울면서 자기 것도 내놓으라고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니, 세 살 때부터는 점순이에게 옷 서너 벌을 사주면 꽁꿀이에게도 한두 벌은 사주게 되었다. 네 살 때부터는 어린이집에 다니다 보니 사회생활을 위해 꽁꿀이도 계절별로 한두 벌씩은 새 옷을 사줬다. 꽁꿀이에게도 옷을 똑같이 계속 사주기엔 우리 부부의 주머니 사정도 그리 넉넉지 않았고 또 언니가 입었던 옷들이 아직 입을만하다 보니 돈과 상관없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섯 살이 된 올해 봄쯤, 역시나 언니 옷은 대여섯 벌, 꽁꿀이 옷은 한두 벌 새로 사서 안겨주었는데 꽁꿀이가 한 마디 했다.
언니 것도...
어차피 내꺼야.
이 말을 듣고 남편이랑 둘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래, 언니 것도 작아지면 어차피 꽁꿀이가 입으니 어차피 네 것이 되는 거지, 라며 다섯 살에 벌써 둘째의 설움을 극복하고 진리를 터득한 꽁꿀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3. 그리고 오늘 아침에
새벽부터 일어나 등원 가방 챙기고 아침 챙겨주고 머리 빗겨주고 엄청난 카오스 속에 등원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라고 하는데, 꽁꿀이는 곧 죽어도 자긴 '구두'를 신겠단다. 이주쯤 전에 점꽁대디가 마트에서 보고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할 수 없이 사준 (내 눈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구두가 낡았다고 새로 사주라는 점꽁대디...ㅋ) 반짝이 구두는 꽁꿀이의 요즘 최애 신발이다. 오늘은 숲에 가야 하는 날이라서 선생님이 꼭 운동화 신고 오라고 했다고 말해도 도통 통하지를 않는다. 모범생인 점순이는 아무리 하고 싶은 것도 '선생님이 안된다고 했어' 한 마디면 바로 단념하는데 우리 꽁꿀이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나도 출근해야 하고 시간을 흘러가고... 할 수 없이 꽁꿀이만 구두를 신고 점순이는 운동화를 신고 나는 손에 꽁꿀이 운동화를 들고 차에 탔다. 유치원 앞에 갔더니 선생님을 쳐다보고는 구두를 벗어서 나에게 준다. 그래, 그거면 됐어, 꽁꿀아. 오늘도 유치원에서 재밌게 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