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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마운틴 Apr 10. 2021

둘째는 투명하다

내면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


나도 점꽁대디도 첫째로 자라오다보니 둘째의 돌발행동, 이유없는 떼쓰기, 이유없는 애교, 사랑스러운 반전에 늘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첫째 점순이를 키울 땐 육아서를 읽어보고 좋다는 것을 해주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계획한 대로 아이가 따라와주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가끔은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정답' 을 강요하기도 했다. 점순이가 두 돌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극한육아 상황은 조금씩 완화되었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들어가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점순이 21개월에 꽁꿀이가 태어났는데 태어나서 돌까지는 그렇게 순한 아이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잘먹고 잘자고 잘웃었다. 점순이를 키울 때는 아이가 자다 깨면 엥~ 하고 울기 시작해서 심할 땐 두세 시간을 이유없이 울어댔는데 꽁꿀이는 돌전에 낮잠을 자다가 깨도 울지도 않고 혼자서 고개들고 멀뚱멀뚱 놀고 있어서 엄마인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둘째가 세 돌이 지나고나자, 자신의 의사를 말로 조금씩 표현하는데 그 의사표현에 두 가지 특징은 '솔직함' 과 '눈치빠름' 이다. 첫째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부모가 그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으면 징징거리거나 우는 소리를 하지만 드러눕거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둘째는 어떻게 된 게 자신이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짧고 굵게, 크~게 울어대고 그렇게 해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하여 어른들에게 애교를 피워서 안 들어줄 수 없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주차장에 갈 때까지만 해도 비가 거의 오지 않다가, 어린이집 입구에 가니 하늘이 구멍난 듯 폭우가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폭우였기에 차에 우산이 하나밖에 없었고 아이들의 비옷도 어린이집 안에 있어서 우산 하나로 나 포함 세 명이 차에서 내려 어린이집까지 가려면 누군가는 비에 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하나씩 어린이집 입구로 날라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뒷좌석에서 꽁꿀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가 나 좀 안아줘. 비 맞기 싫어!"


그 말을 들은 점순이는 꽁꿀이에게 '너만 안기면 어떡하느냐, 엄마도 힘든데 왜 여섯살이 아직도 안아달라 하느냐' 며 핀잔을 주었으나 꽁꿀이는 들은 체 만 체, 안 안아주면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며 강력하게 의사를 표명한다. 나는 얼른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하고, 꽁꿀이는 계속해서 떼를 쓰고... 결국 나는 시간이 더 지체되는 걸 막기 위해 꽁꿀이를 안고 점순이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서 어린이집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린이집 현관에 도착하자 신난 꽁꿀이는 '우와... 비 많이 온다... 수영하고 싶다, 재밌겠다' 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버리는데 그 모습이 밉지 않고 그저 귀엽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얼핏 보면 어릴 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주변의 보는 눈을 더 의식하고, 남들이 비난하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는 일이다.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야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상적인 가족형태라고 생각하는 부부와 1남 1녀로 이루어진 4인가족이 이상적이고, 아이들은 교과서 대로 잘 자라서 인성과 학업이 평균이상은 되어야 한다. 어른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절대적으로 표현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꽁꿀이를 보고 있으면 그게 참 쉽다. 걸어가기 싫으니 안아달라 하는 거고, 아빠가 과자를 줄 때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다가, 엄마가 쥬스를 준다고 하면 1초도 안 되어서 다시 엄마가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첫째가 엄마를 독차지하고 있을 땐 그리 할머니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더니 이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바라기가 되었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 남의 감정 따위 생각하지 않고 - 마음껏 표현한다. 


물론 제멋대로 사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욕구에 귀기울이고 마음의 소리를 최우선으로 듣는 모습은 너무나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며 그렇지 못한 나, 남편, 점순이를 생각하면 가장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 꽁꿀이인 것 같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고,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는 게 아니라, 서로 눈치만 보다가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론에 다다르거나, 오로지 남들 눈에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몰아치는 하루하루에도,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면아이를 보듬어주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상이 그래서 더 소중하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꽁꿀이처럼 투명하게 행동하지는 못해도 글 속에는 나는 꽁꿀이처럼 내 마음을 있는 힘껏 그대로 표현하고 내 글을 통해 내 마음이 치유받는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둘째처럼 솔직해지기' 위해서이니, 아이가 스승이란 말이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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