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지친 날 달래주는 너

낮은 베개의 편안함

by 오늘

십 대 때 어느 날 TV에서 ‘애모’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김수희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목에 주름도 없고 미모 관리를 어떻게 하시냐는 질문에 ‘평생 베개를 베지 않아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베개를 안 베고 산다고? 그날부터 나는 베개를 베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 지금도 목에 주름이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베개를 베지 않으면 목에 주름이 확실히 적게 생기는 건 경험적으로 체득한 일이 되었다. 내 평생 베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내게 생각지도 못했던 베개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임신했을 때까지도 베개 없이 잠드는 일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엄마라면 누워서 하는 수유 자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밤중 모유 수유를 할 때였다. 아이가 젖을 빨려면 나와 아이가 옆으로 누워야 했다. 젖을 입에 문 채로 잠드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를 재우려면 반드시 내가 옆으로 누워야 했다. 우량아였던 아이를 안고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손목이나 허리가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장장 18개월을 수유했는데 밤마다 그 자세를 하고는 베개가 필수가 될 수밖에. 잠들 때까지 베개를 접어 높이를 높여서 베고 옆으로 누워 수유를 하던 그때도 목에 주름이 깊어질까 엄청 신경 쓰였다. 모유 수유가 끝나고 나서는 옆으로 누운 자세로 아이를 재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힘든 시기도 시간이 지나가는구나.


그 이후 잘 때 뭔가가 허전했다. 자세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폭신한 베개에 편안한 맛이 길들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바로 누워도 목덜미가 허전한 게 머리가 뒤쪽으로 한참이나 기울어진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베개를 베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집 근처 모던 하우스에서 판매하는 땅콩 베개를 샀다. 아이도 하나 나도 하나 그렇게 높이가 낮은 베이비용 베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땅콩 베개는 모양이 땅콩 같아서 그렇게들 부른다. 높이 5cm 정도라 무리가 가지 않고 좋았다. 50*30 사이즈 아이들이 베는 사이즈가 나에게 딱 좋았다. 그 뒤로 주기적으로 몇 번 땅콩 베개를 새것으로 바꿨다. 이제는 높이가 낮은 베개 높이에 내 머리가 적응이 된 것이다. 이번에 새로 산 ‘핑크 베개’는 모던하우스 제품으로 사이즈는 50*30로 땅콩 베개와 같고, 충전재, 겉감 모두 소재가 폴리에스터 100%이다. 이 베개 장점은 세탁기 넣고 간편하게 세탁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땅콩 베개는 오래되면 새것으로 갈아줘야 했는데 이 제품은 충전재까지 빨아서 뽀송하게 말려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높이는 3cm. 완벽히 마음에 쏙 든다. 색은 연한 핑크색. 이 베개는 단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지만, 나처럼 목주름에 관심 있는 엄마들도 이런 베개를 베면 좋을 것 같다. 사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이랑 자면 팔베개를 하고 품속에 폭 파고들며 ‘베개 따위는 필요 없어’ 애정표현 같은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 높고 딱딱한 팔베개를 어떻게 하고 잤을까?


낮은 베개는 나에게 포근함을 준다. 폭신하면서도 아늑한 기분을 준다. 한없이 가슴이 무너져 내려 우울한 밤이 되면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도 조용히 받아 준다. 내게 힘내라 울지 마라 일어나라고 귀찮기만 한 충고 따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기다려 준다.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분 좋은 날엔 몽롱한 꿈속으로의 여행을 선사해 준다. 첫 번째 관문으로 머리를 대야만 한다. 이 낮고 귀여운 핑크 베개의 편안함 속으로 머리를 기대야만 꿈속으로의 여행 경로를 지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하루 동안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나를 다독여주고 밤마다 숙면을 선물해 준다. 고마운 친구 같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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