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가정하고 물건 정리 해보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새벽 5시다. 엄마가 무슨 일일까?
"아빠 돌아가셨다. 새벽에 확인했어. 지금 경찰서 진술하러 가니까. 애 일어나면 천천히 와."
"뭐라고? 돌아가셨다고?"
"응. 전화를 계속 안 받으시길래. 2층 환희 아빠 보고 내려가보라고 했더니. 돌아가셨다고 빨리 오라고 해서. 심장약 거실에 두고 주무셨나 봐. 하필 오늘 혼자 계실 때 그랬네."
"응 엄마. 괜찮아?"
"...... 2층에 환희 아빠가 처음 목격자라고 같이 있어. 천천히 와라."
전화로 소식을 듣고 "부모는 자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빨리? 7년 전 아빠 나이 60세였다.
수많은 물건을 혼자 정리하며 힘겨워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영면했을 때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집안에 가득 차 있었는지. 1톤 트럭으로 두 번이나 실어 날랐다고 했다. 뭔가 버리거나 정리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그동안 쌓아 두었던 물건들. 집에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물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밖으로 버려졌다. 심란하고 슬픈 일을 감당하고도 혼자 그 많은 짐을 정리해야 하는 남은 자의 괴로움을 보았다. 일주일을 넘게 버리고, 추억을 곱씹으며 울다 웃다 그 시간을 오롯이 홀로 지나가야 하는 엄마가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그전 집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의 물건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15년 살던 빌라에서 그렇게 많은 짐이 나오다니 놀랍기만 했다. 엄마에게 그 안에 있던 아빠와의 추억을 소중히 정리할 여력은 전혀 없어 보였다. 정리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다 버리시라고 했다. 그때 거의 모든 물건을 다 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 엄마는 새로운 물건을 하나씩 샀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겠지. 엄마가 미니멀리스트라서 단번에 모조리 다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 이때 나의 어릴 적 모든 추억도 쓰레기로 버려졌다. 조금은 아쉽지만 사실 지금 내 삶을 살아가는 데 그 추억을 꺼내 보는 시간은 극히 드물다.
아빠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떠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건강할 때 돌아가신 일은 자식인 나에겐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며 아파하는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물건을 쌓아 두고 바람같이 사라져 버린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히 외로운 작업을 물려주고 가신 셈이다.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되면 함께 사그라질 물건들은 남은 사람을 위해 최대한 적은 것이 좋겠다. 사람은 올 때도 갈 때도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는다. 아무런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가볍고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떠날 때를 생각해서이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가실 때 생각해서 지금 조금씩 정리를 해 달라는 말은 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작가는 이 책에서 지혜로운 방법을 제안해 준다.
부모님께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좋은 물건들이 많긴 한데, 이 많은 것들을 나중에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이때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들 다 마음에 드세요?”
“혼자 계시게 되면 너무 많은 것들이 남겨져 있지 않게 우리가 천천히 같이 해 볼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부모님이 화제를 바꾸거나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몇 주 뒤 몇 달 뒤 한 번씩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나를 둘러싼 많은 물건은 어떻게 될까? 한 번쯤 죽음을 가정하고 주변을 정돈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세상을 뜬 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물건을 정리하게 될 텐데 처리할 때 부담을 덜어주는 일은 내가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혹시나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물건 정리하는 데는 아마 반나절이면 다 정돈이 될 것 같다. 내 물건을 내가 정리해 본다. 이 시간은 앞으로 유한한 나의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보내게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