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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4. 2019

회의 시간에 집에서 전화가 오면

남일 같지 않아서

아침 8시 45분 회의시간, 집 번호로 전화벨이 울린다.


부사관은 전화번호를 확인하자 바로 끊지 못하고 대장의 눈치를 본다. 대장이 눈짓으로 전화를 받으라고 하자 그제야 부사관은 고개를 숙여 조용히 전화를 받는다. 


큰 애 

(울먹이여) "엄마... 동생이 학교 안 간다고 고집부려요"


군인 엄마

"이놈아 그렇다고 6학년이 우냐! 눈물 닦고! 엄마 집에 가서 먼지 나게 맞기 싫으면 얼른 학교 가라~"


큰 애

(계속 울먹이며) "......"


군인 엄마

"새 학기부터 지각할 거야! 얼른 동생 챙겨 나가! 늦으면 집에 가서 혼나!"


큰 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네 엄마..."


부대장

"......"


군인 엄마

(서둘러 전화를 끊으며) "죄송합니다."


부대장

"OO중사. 괜찮으니까 전화 통화 마무리하고 와요. 애들이 뭔가 어려운 게 있으니까 엄마한테 전화를 한 걸 텐데. 아침에 딱히 중요한 안건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가서 애들이랑 통화 먼저 해요"


군인 엄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부대장

"아니 내가 안 괜찮아요. 같이 애 키우는 입장에서 내가 다 걱정스럽네. OO 중사, 진짜 괜찮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나가서 통화 먼저 하고 와요."


군인 엄마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그제야 부사관은 종종걸음으로 회의실을 빠져나가 큰 애에게 서둘러 전화를 건다. 회의 시간에 빨리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짜증과 조급함에 밀렸던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운 마음이 그제야 고개를 든다. 출근하느라 아이들의 아침을 방치한 것만 같아 전화벨이 울릴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결국 전화로 둘째를 달래 첫째 손에 등교를 했음을 확인하고 나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미 아침 회의는 끝나서 모두 일과에 투입된 후였다. 부사관은 아침부터 벌어진 갑작스러운 소동에 진이 쭉 빠져 잠시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른다. 

아이들이 크면 좀 더 편해질 것 같았는데,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지고 왠지 더 힘들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가정과 직장 모두 어렵기만 한 것 같아 그저 한숨만 나온다.


상념도 잠시 부사관은 회의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을 기억해 내고, 일과 투입 전 대장의 배려에 감사 표시는 해야 할 것 같아 헝클어진 머릿속을 털어내고 대장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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