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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Oct 09. 2019

아이들 씻기기 졸업한 날

이젠 내가 씻을래요

육아를 하다 보면 루틴 하게 반복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씻기기'이다.


씻기는 게 뭐가 힘드냐고? 해보시라. 매일 아이들을 씻긴다는 게 쉽지 않다. 일단 동일한 일을 매~일 반복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게다가 제대로 씻기지 않으면 아이들은 가려움을 토로하거나,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심하면 아토피가 생기기도  한다. 


씻기기의 난이도는 아이들의 나이에 반비례한다. 제일 어려운 것은 신생아 씻기기이다. 산모는 몸을 풀고 나면 손에 물을 묻히면 안 되기 때문에 신생아는 가족들이 씻겨야 하는데 이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신생아 씻기기는 '타협 없는 타임어택'이다. 절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꼼꼼하고 깨끗하게 씻겨야 한다. 왜냐하면 신생아는 자칫 오래 씻기면 백이면 백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는 감기에 걸리는 게 정말 큰 일이다. 감기에 걸린 신생아를 본 적 있는가? 죄책감은 둘째치고 약을 먹일 수도 없고, 폐렴으로 번질까 걱정해야 하고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절기나 추운 계절의 신생아 씻기기는 그 난이도가 더욱 올라간다.

뿐만 아니라 그 조그만 아이를 우악스러운 아빠의 손으로 씻기려면 자칫 떨어질까 힘주면 아플까 전전긍긍이다. 내 손이 원망스러워지고 스스로의 신체 조정능력에 장애가 있진 않을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때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씻겨온 아이가 오늘 자신이 씻겠다며 아빠는 나가 있으란다. 설마 하는 마음에 지켜보니 당연히 조금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거품을 바르고 비빈 후 물로 헹구는 일련의 과정을 자연스럽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가르친 적도 없건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스스로 씻었다.'  


계절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신경을 쓰며 아이들을 씻겨 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준비하고, 때에 따라 물놀이를 할 수 있게 욕조에 물을 받기도 하고,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고, 물을 뒤집어써가며 아이들을 씻기고, 장난을 치거나 떼가 나서 안 씻겠다는 아이들과 다퉈가며 씻기던 그 모든 시간이 갑작스레 종료를 고하였다. 솔직히 그 시간들이 고되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씻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또 이렇게 오늘도 자라는구나.


씻기기가 끝난다는 행복함 끝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씻기면서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대화를 하며 아이들의 하루를 엿볼 수 있던 순간이 사라졌다. 이제 그 시간을 다른 방법으로 공감하며 채워나가야 하겠지.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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