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눈에 문득 눈에 보인 필요 없는 책들이 시작이었다. 안 보는 책들을 한가득 꺼내버리고 아이 책장의 배치를 이리저리 바꾸다가 안 입는 아이의 옷, 안 쓰는 장난감이 떠올랐고 창고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창고 안에 박스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도 눈을 질끈 감고 모른척했는데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아무 결심 없이 하고 있는 편이 실천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정리는 드림할 물품, 재판매할 물품, 쓰레기 한가득을 남기고 오전이 다 지나서야 끝났다. 이 많은 짐들을 이고 지고 있었을 집이 한결 가벼워졌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물건들을 바로바로 쓰레기봉투에 툭툭 던져놓으며 후련함을 느꼈다. 한가득 나온 쓰레기를 보면서 살면서 중간중간 내 집과 생활을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이 남기고 간 잔해나 부질없는 감정들도 이렇게 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건을 비우는 건 마치 새로운 물건을 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34살의 나와 함께할 물건들을 버린 자리에 35살의 나와 함께할 물건을 채워간다. 34살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물건들이 말해준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또 아무렇게나 쌓아둔 물건을 한꺼번에 정리하며 35살을 추억하겠지.
남은 물건을 동선에 맞게, 분류에 맞게 차곡차곡 자리를 잡아준다. 머릿속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두고 정리를 마친다. 이제 일어나 저 쓰레기를 재활용장에 버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