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틸베의 사랑

애프터글로우

by Breeze

어제 전남지역에 사는 친구가 두 아이를 낳고 5년 만에 첫 자유부인 찬스를 쓰고 부산으로 와주었어. 친구와 데이트를 시작할 첫 끼니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타게팅을 세분화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적확하게 맞춘 광고 문구가 적힌 장소가 제일 상단에 뜨는 거야. <자유 부인 힐링 장소>!! 뚜둔!! 순간 내 음성이 다 녹음되어 광고까지 만드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 친구에게도 보여주니 막 웃으면서 신기하다며 오늘은 여기로 가야 하는 거네~라는 한 마음이 되어 그곳으로 갔어. 너에게 보여주려고 다시 찾아봤는데 광고문구가 바뀌어있네. 정말로 음성 인식하여 광고 문구도 바꾸는 걸까?

맛난 장소에 기분 좋게 도착하여 음식을 주문을 하고 물이랑 접시를 챙기러 셀프바로 갔어. 친구 딸아들 이름이 해와 별을 뜻하는데 종이컵에 해와 별이 그려져 있는 거 있지. 마치 5년 만에 처음으로 육아 해방되어 놀러 나온 엄마 잘 놀다 오라고~ 그런데 우리 잊지는 말라는 마음 담아 종이컵으로 배웅 온 듯해서 서로 또 웃었어.

우리를 미소짓게 한 <해님과 별님>


마치 우리를 위한 세트장처럼 소품까지 하나하나 신경 쓴 듯한 동시석 터졌던 이곳의 이름은 <AFTER GLOW>. 나중에 밤이 되어 친구를 배웅하고 제미나이에게 이 표현의 의미를 물어보니

이렇게 답해주더라.


Afterglow(애프터글로우)는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주요한 뜻으로 쓰입니다.

1. 사전적 의미: 잔광(殘光), 저녁놀 빛을 발하던 무언가가 사라진 후에도 남아있는 빛을 뜻합니다.
• 가장 흔하게는 ‘해가 진 직후 하늘에 남아있는 붉은빛(저녁노을)’ 을 의미합니다.
• 불꽃이 꺼진 후 남아있는 희미한 빛을 뜻하기도 합니다.

2. 비유적 의미: 기분 좋은 여운
어떤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을 한 뒤에 마음속에 계속해서 남아있는 기분 좋은 감정이나 상태를 뜻합니다. 일상에서는 이 뜻으로 정말 많이 쓰입니다.
• 좋은 영화를 보거나 훌륭한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감동
• 큰 성공이나 만족스러운 일을 끝낸 후의 뿌듯함


그날의 제목이었어. 친구도 시작부터 우리 키워드였다며 신기해하더라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 헤어짐까지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영화처럼 마무리한 듯 완벽한 한 편인 느낌이었어.


AFTERGLOW



한 편의 영화처럼 우연의 시퀀스가 기가 막혔던 그날의 에피소드로 이번 주 답장을 시작한 이유가 두 개 있어. 우선은 지난주 ‘다음 시간에…’가 뜬 것 같은 궁금증과 설렘을 가지고 기다렸던 너의 <어떤 사연​>이 오늘 공개되었잖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 시절의 너의 사연이 구체적으로 담긴 글을 읽으며 먹먹함을 안고 그곳에 머물렀어. 아프고 슬프고 대견하고 위로되고 먹먹하고 다행이고… 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나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말이야. 그리고 출구로 나오기 전에 조용히 ’After Glow’라고 적힌 쪽지를 두고 오고 싶더라. 긍정적인 경험은 분명 아니었지만 너의 모든 사랑이 흐른 후에 남는 삶의 여운이 After Glow이길 바라는 마음에 말이야.



두 번째 이유는 우연 같아 보이는 너무나도 정렬된 ‘동시성’이 하루 종일 이어졌던 친구와의 시간이 오늘 제목을 떠올렸던 날과도 닮았거든. 마치 내가 트루먼쇼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이 짜인 각본처럼 척척 톱니바퀴처럼 하루가 오차 없이 흘러가는 듯할 때 있잖아. 한두 번 우연이면 신기하고 웃지만 계속 이어지고 연속되면 그것도 또 다른 공포더라고. 진짜 트루먼쇼인가? 싶어지기도 한다니까~


내 삶에서도 어떤 사연이 쓰이고 있던 그 시절, 판교 현대백화점 교보문고를 가는 길이었어. 판교역에서 내려서 지하철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나왔는데 소녀다움과 사랑스러움 속에서 어쩐지 모를 가녀리게 마음을 시큰시큰 콩콩하게 만든 핑크색깔 꽃에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원래 꽃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인식하며 그건 마치 그 꽃이 나를 꽉 잡아두는 것 같이 느껴졌어. 사진을 찍고, 사장님께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니 <아스틸베>라고 하더라고. 예쁘고 좋은 것을 보면 제일 먼저 나누고 싶은 사람은 그 시절에도 여전히 이리였어. 이미 다 부서져버려 난파된 관계 속에서도 난 탈출하지 못했던 거지. 그래서 아스틸베 사진과 꽃말을 이리에게 보냈어.



기약 없는 사랑




꽃말을 보고 ‘아..‘ 할 수밖에. 그 시절의 내 마음이었거든. 너무 슬픈 사랑- 도망치듯 떠날 준비를 하던 이리와 붕괴되어 버린 신뢰로 너덜너덜 지쳐버린 나- 그러면서도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했던 이리와 이니.

슬프고 신기하게도 아스틸베 사진과 꽃말은 그가 확인한 마지막 메시지였어. 그리고 그의 추정 사망시각을 보건대 아마 거의 그의 삶의 끝자락 언저리에 닿은 카톡이었던 것 같아. 아스틸베와 꽃말을 보았던 그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엔 ‘아스틸베’가 내 사랑의 꽃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그의 사랑도 같은 꽃말이었겠단 생각에 많이 슬펐어. 지금도 꿈과 현실에서 그가 보내는 듯한 우연을 보면 말이야.

이러한 이유로 나는 믿게 되었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또한 ’ 사랑‘이라고 말이야. ’ 사랑이 흘러간​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너의 브런치 북에 답장하는 이 브런치 북 제목이 ‘그 또한 사랑이더라고​’ 가 된 이유이기도 해.


삶은 이렇듯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르쳐주고, 그러니 그저 힘빼고 경험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신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익숙하게 되기 전까지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는데 이제는 피식 웃으며 ‘Thanks God’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니까. 하나 하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처음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에 비하면 이제 ‘초보 운전’딱지는 슬그머니 떼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오만이 빼꼼히 고개를 들기도 해. 그러면 또 삶은, 신은 내게 알려주겠지. 내가 알아야 할 때 알게 될 것을 말이야.


잎새뜨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허니, 정렬되어 잘 흘러가고 있는 허니, 고마와. 같이 잘 놀다가자!



아스틸베 /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velvet_flora_field/221390478901?view=img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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