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소소하지만 행복한 주말

by 오르민

올해 여름은 작년과 달리 푹푹 쪘다.

그래도 요즘에는 처서도 지나고 비도 많이 왔던 탓인지 아침,저녁으로는 꽤 선선해져서 엄마랑 저녁 식사 후,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냥, 오늘은 걷기 취소하고 넷플릭스로 드라마 이어 볼까~?"


오늘도 저녁 식사를 한 후, 슬슬 걷기 위해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오늘따라 나가기가 귀찮으셨는지 기대하는 말투(?)로 슬쩍 물어보시길래 내가 단호박처럼 단호하게 대답했다.


"엄마, 그냥 걷자. 걷고 와서 봐요~ 안 걸으면 계속 안 걷게 돼."

"그래, 니 말이 맞다. 가자."


엄마가 아쉬운 말투로 내 말에 동의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나도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물병과 작은 우산(요새 소나기가 자주 와서 꼭 챙긴다)을 산책가방에 넣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갔다.


"그래, 귀찮아도 막상 나오면 기분이 좋다."

"응. 그리고 요새는 미세먼지도 없어서 공기도 좋고, 하늘도 진짜 예뻐요."


요 며칠간, 하늘이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침과 낮에는 크고 작은 하얀 구름들이 파아란 하늘에서 여유 부리듯이 잔잔히 떠있어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치유되는 듯 하고,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또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어준다.

육교에서 찍은 보랏빛의 하늘. 파란 하늘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MJ



엄마와 나는 계속 계속 걸었다. 근처 공원을 지나서 작년에 다른 집으로 이사간 동생네를 향해 걸었다. 이번에는 동생네에게 줄 단호박들과 잠옷 등 시시콜콜한(그러나 엄마의 애정이 담뿍 담긴) 물건들을 주기 위해서이다.


"엄마, 저 강아지 봐. 뽀송이 같다."

"그러게...어렸을 적 뽀송이 같네."


걷다가 횡단보도 맞은 편에서 몰티즈를 보았다. 하얗고 작은 몰티즈가 횡단보도를 얼른 건너고 싶어서 끙끙 거리고 있었다. 우리 뽀송이도 횡단보도에서 신호 때문에 내가 멈춰 있으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 뒤이어 답답하다는 듯이 맹렬하게 짖곤 했다.


우리 뽀송이가 하늘나라로 간 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아직도 뽀송이가 없는 집안이 어색하고, 뽀송이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을 걷고 있노라면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엄마와 걸을 때는 일부러 뽀송이 산책을 많이 안 했던 길로 걷곤 한다. 아무튼, 자세한 것은 기회가 된다면 그 때 다루기로 하고...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고, 엄마와 나는 맞은편 몰티즈가 즐겁게 산책길 떠나는 모습을 고개를 뒤로 젖혀가면서까지 지켜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엄마!"


동생네 거의 다 도착할 때쯤, 우리를 마중하러 길에 나와있던 동생이 크게 소리치며 손을 위로 흔들었다. 동생도 뭔가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작은 손 선풍기였다.


우리는 당근마켓 거래자들마냥 길 한구석에서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았다. 동생은 엄마가 최근에 구매한 간절기용 잠옷도 건네자 지금 입기 딱 좋다며 만족해했다. 옷 욕심이 없는 동생을 위해서 엄마는 아직도 동생 옷을 챙겨주고 있다.


"집에 들어왔다 가실래요?"


동생이 물어봤지만, 집에 동생 남편이 있기도 하고(격의 없이 편한 사이지만, 그래도 불쑥 집에 들어가는 건 별로니까.) 엄마와 나도 얼른 집에 돌아가서 씻고 쉬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렇게 동생과 헤어지고 엄마와 나는 또 열심히 30분을 내리 걸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인터넷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편의점 쿠폰을 쓰기 위해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시원한 옥수수수염차를 샀다. 설문조사 답변을 할 때는 귀찮았는데 이렇게 공짜로 시원한 음료를 사 마실 수 있으니 개이득...!!


집에 도착해서 땀으로 끈적끈적해진 몸을 시원하게 씻고(선선하지만 은근 습하다) 뽀송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그리고 한 시간을 걸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안 걸었으면 저녁 먹고 그냥 핸드폰하면서 앉아 있던지, 티비 보던지 하며 뒹굴뒹굴거리고 하루가 끝났을테니까... 그리고 요새는 저녁 먹고 소화가 잘 안되어서 꼭 걸어야 배가 편안하기 때문에 더 걷는 편이다.


"넷플릭스 켜 봐!"


샤워를 마친 엄마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막내 동생도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같이 자리잡고 앉았다. 요새 엄마, 나, 막내동생이 열심히 정주행하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어서 셋이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꼭 같이 거실에 모여 티비를 본다. 막내 동생이 먼저 다 보고나서 나와 엄마에게 추천해준 드라마인데 볼수록 재밌다며 본인도 또 보고 있다.


우리와 드라마 취향이 다른 아빠가 뒷짐지고 거실에 서서 "그게 그렇게 재밌냐?"며 신기하다는듯이 물어보았다. 엄마가 재밌으니까 보는거지, 방해되니 말 시키지 말라며 티비에서 눈도 안 떼고 대답했다. 아빠도 몇 개월 전에 웨이브로 '낭만닥터 김사부'를 밤새면서 보셨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참견 안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드라마에 집중하다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었다. 토요일 밤이니까 늦게까지 드라마를 봐도 맘이 편-안하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나머지 회차는 내일 마저 보자며 합의보고 다들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가느라 거실 복도 불을 끄고 깜깜해진 집안을 자기 전에 쓱 둘러보았다. 그리고 거실 티비 아래 장식장에 놓여있는 뽀송이 사진액자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깜깜해도 집 밖 가로등 불빛 덕분에 어렴풋하게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뽀송이가 언제 아팠냐는듯이 환하게 웃고 있어서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아프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뽀송이도 잘 자." 하고 나지막하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왔다.(요새 자기 전의 루틴이다.)


한 시간을 걸으며 땀을 흘린 탓에 적당히 피곤해진 몸과 오늘 하루의 만족감으로 가득찬 마음(+내일 출근 안해도 된다!)으로 침대에 누우니 잠이 솔솔 온다.


완전히 잠이 들기 전에 아까 보던 드라마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며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정말 나이와 맞지 않는 쓸데없고도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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