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불운
2021년.
불행은 잇따라 찾아왔다.
이 불청객들이 미리 작전회의라도 한 모양이다. 연달아 원투 펀치를 날려 나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리더니 이내 어퍼컷으로 녹다운시키고야 말았다. 미리 작당한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을까...
첫 번째 불청객은 느닷없이 찾아와 11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데려갔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 코카스파니엘 두 마리를 입양했고, 3대 악마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는 그들에게 장난이, 꾸러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한 마리씩 맡아 키웠다.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꾸러기들도 함께 살게 되었다.
늘 나와 함께였던 장난이는 둘 중 덩치가 더 큰 녀석으로 자기보다 작은 꾸러기에게 늘 양보하는 온순한 아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 밖에도 수시로 달려와 뽀뽀를 퍼붓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잘 먹고 잘 놀던 장난이가 갑자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지만 장난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우리를 떠났다.
장난이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장난이가 떠나던 그 시간에 갇혀버린 듯, 마지막으로 날 바라보던 슬픈 눈망울이 계속 떠올랐다.
상실감을 채 이기지 못하고 있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가 생겼다. 난임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결혼 7년 만에 찾아온 소중한 아이였다. 나만큼이나 장난이를 사랑했던 엄마는 이 아이는 장난이가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라고 말해주었고, 우리는 새 희망을 품었다. 더는 힘들어하지 말라고 장난이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때 두 번째 불청객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친다.
어렵게 품게 된 아이는 심장이 약했고 결국 우리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떠났다. 아이가 떠난 뒤의 나는 살짝만 밟아도 바스러지는 늦가을의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려서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소파술을 받던 날 남편은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꾸러기를 데리고 근교로 나가 긴 산책을 했다. 장난이가 없는 산책은 처음이었다. 품고 있던 새 희망도 사라졌다. 우리는 내내 말이 없었다. 다시 함께 산책을 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정처없이 걸었다.
그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몸도 마음도 추스르지 못했는데 세 번째 불청객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주위를 맴돌며 치명타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쓰러졌다. 말 그대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진다며 집 근처 통증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저릿한 통증이 발바닥부터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남편은 여러 가지 정황상 본인의 상태를 더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남편을 겨우 부축해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 뒤로 남편은 누워만 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길랑바레 증후군.. 희귀병이라고 했다. 원인미상으로 발병하여 몸을 마비시키지만, 치료를 받으면 비교적 쉽고 빠르게 회복된다는 이 희귀병을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 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병원생활을 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남편이 여태껏 잘못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무려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치명타를 입었다. 내 삶은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마흔이 되도록 인생의 전환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청객들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