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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Jan 25. 2023

프롤로그_불청객들

잇따른 불운

2021년.

불행은 잇따라 찾아왔다.

이 불청객들이 미리 작전회의라도 한 모양이다. 연달아 원투 펀치를 날려 나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리더니 이내 어퍼컷으로 녹다운시키고야 말았다. 미리 작당한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을까...


첫 번째 불청객은 느닷없이 찾아와 11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데려갔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 코카스파니엘 두 마리를 입양했고, 3대 악마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는 그들에게 장난이, 꾸러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한 마리씩 맡아 키웠다.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꾸러기들도 함께 살게 되었다.


늘 나와 함께였던 장난이는 둘 중 덩치가 더 큰 녀석으로 자기보다 작은 꾸러기에게 늘 양보하는 온순한 아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 밖에도 수시로 달려와 뽀뽀를 퍼붓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잘 먹고 잘 놀던 장난이가 갑자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지만 장난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우리를 떠났다. 


장난이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장난이가 떠나던 그 시간에 갇혀버린 듯, 마지막으로 날 바라보던 슬픈 눈망울이 계속 떠올랐다.


상실감을 채 이기지 못하고 있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가 생겼다. 난임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결혼 7년 만에 찾아온 소중한 아이였다. 나만큼이나 장난이를 사랑했던 엄마는 이 아이는 장난이가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라고 말해주었고, 우리는 새 희망을 품었다. 더는 힘들어하지 말라고 장난이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때 두 번째 불청객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친다.


어렵게 품게 된 아이는 심장이 약했고 결국 우리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떠났다. 아이가 떠난 뒤의 나는 살짝만 밟아도 바스러지는 늦가을의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려서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소파술을 받던 날 남편은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꾸러기를 데리고 근교로 나가 긴 산책을 했다. 장난이가 없는 산책은 처음이었다. 품고 있던 새 희망도 사라졌다. 우리는 내내 말이 없었다. 다시 함께 산책을 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정처없이 걸었다.


그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몸도 마음도 추스르지 못했는데 세 번째 불청객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주위를 맴돌며 치명타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쓰러졌다. 말 그대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진다며 집 근처 통증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저릿한 통증이 발바닥부터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남편은 여러 가지 정황상 본인의 상태를 더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남편을 겨우 부축해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 뒤로 남편은 누워만 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길랑바레 증후군.. 희귀병이라고 했다. 원인미상으로 발병하여 몸을 마비시키지만, 치료를 받으면 비교적 쉽고 빠르게 회복된다는  희귀병을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직장에 휴가를 내고 병원생활을 한지  달쯤 지났을 , 나는 남편이 여태껏 잘못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무려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치명타를 입었다. 내 삶은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마흔이 되도록 인생의 전환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청객들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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