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말해도 똑같다면
“여보세요? 거기~ OOO 사장님이죠? 물건 있나요?”
“아뇨. 전화 잘못거신 것 같아요. 저 아니에요.”
곧이어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받지 않았는데 1분 뒤에 또 오기에 받았다.
“맞다는데 왜 아니라고 해요. 남편이 모텔 사장이고.”
“아니요. 아니라니까요. 번호를 잘못 기재하신 것 같네요. 다시 전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그 번호다. 알람에는 못 일어났는데 전화에 잠이 달아났다. 전화받기 전에 무슨 말이 입에서 나갈지 알 것 같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고 싶지 않은지 어제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아니라니까요, 저 아니에요. 언성을 높여 예상된 그 말을 하고 끊었다. 수신자 차단을 했다. 근데 잠결에 잘못 들었나. 총 있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 그 말은 꿈이었겠지. 그나저나 왜 세 번을 확인해야 했을까.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일을 견디기 어려워 한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는데. 작년에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일이 쌓이다 보니 더 힘들어진 것 같다. 일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제 했던 말을 오늘도 한다. “세수하자~”, “따뜻한 물로 꼼꼼하게 해야 눈곱이 떨어져 나가”, “밥 다 먹었으면 그릇 좀 치워줘~” 매일 반복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에게 더 그렇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듣거나 스스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1년 정도 되니 이런 생각이 든다. 8살, 1년 가르쳐서 끝나면 육아 고민 없게.
백 번 양보해서 아이는 괜찮다고 해도 어른한테까지 아량이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독감이 일주일째 떨어지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아프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안 그래도 작은 포용력이 발휘 자체가 되질 않는다. 그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같은 행동 안 하냐고? 그게.. 그게… 너무 싫다. 나도 타인이 여러 번 말하게 하는 일을 저지르는 순간이 있다! 안 그러고 싶은데 그러는 나 자신이라니.
타인에게 용서는 바라지 않고. 일단 내가 먼저 봐주고, 나는 그런 일 저지르지 않게 조심하자. 이게 목표다. 그래, 새해니까. 목표 마음껏 세워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