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B급브리핑
봄처럼 푸르른 젊은이들. 우리는 젊은이를 가리켜 청춘(靑春)이라 부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은 무언가 깨끗하고 영롱한 에너지를 주고, 그처럼 거리를 거니는 수많은 청년들은 힘차고 생기 있어 보이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청춘이란 이름 하에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 역시 해보게 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일까?”
오늘 (7월 24일) B급브리핑이 고른 말입니다. 청춘, 이처럼 설레고 고귀한 이름에 아프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넣는 것이 정말 어울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요즘 청춘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에선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인생과 시계를 간접적으로 비교하면서 그들이 살아온 시간은 아직 저물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위로가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여정이,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힘든 세상!… 지치지 않고 살아 갈 원동력이 될까요? 선행학습으로 속이 타들어 가는 중고생들, 캠퍼스의 낭만을 맛보기도 전에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대학생. 열정 페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물들어 가는 빈곤의 모습들. 인륜지대사라 불릴 정도로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을 맞아야 할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달콤한 결혼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풍경들
이것은 적어도 우리 모두가 청춘의 이름값에 어울리기 때문에 준 선물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준 선물은 아닐지라도 이 시대 수많은 청년들이 짊어져야 할 쓰디쓴 고통의 상자를 거둬 드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선물이 아니라고 모른 척 넘어가면 어쩌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이 고통의 상자를 유산으로 물려받을지도 모르니까요.
경쟁의 심화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이치는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오늘날의 청춘들이 감내해야 하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글쎄요. 무조건 밝은 면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최소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묘사된 한 아버지의 절절한 편지에서처럼 현(現) 시대의 어른이 고통을 다 마주하고 나서, 다음 세대에는 밝음만이 찾아오도록 애를 쓰는 그런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그것이 비록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해도 말입니다.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일입니다. 당시 22살의 청년에게 제가 해줬던 말은 이것입니다.
“너는 말로 못할 큰 가능성이 있으니 겁내지 말고 해 봐라.”
다행히 그 청년은 용납해 주었고,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요즘은 그런 말을 대뜸 꺼내기가 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 올 한 해가 지나 봐야 서른넷 정도라 연배가 지긋하신 분들이 이 글을 보시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금은 저의 모든 동생들에게 ‘젊은 시절을 힘겹게 살아내느라 고생한다.’고 토닥여 주고 싶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무심한 말이 아닌 너희들의 청춘을 아프게 해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