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별일 없이 산다
달이 점점 소멸되고, 소멸된 것이 다시 불어남에 따라 계절이 변한다. 달 녀석의 무심한 장난질에 공기의 온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온 세상 희게 물들여 마치 ‘순수의 여왕’이라도 사는 듯한 겨울왕국을 건설하더니 며칠 새 그 성을 헐고 이내 생명은 움터 꽃의 나라가 되었다.
변덕쟁이라고 아무리 꾸짖어도 사실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변화한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보다 더 높게 사야 할 것은 제 할 일을 한다는 것이리라.
내가 이런 변화를 두고 ‘달의 장난’이라 칭했지만 가감 없이 말하면 이건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다. 그래서 늘 정확하고 오차가 없다. 자연은 이렇듯 변화하는데 그럼 세상은 변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현재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분주하기만 하다.
누구는 말로써 누구는 노랫말로써. 그리고 또 누구는 여러 가지 장단으로. 난 그게 굿거리인지 자진모리인지 장조인지 단조인지 A파트인지 B파트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모두가 입을 모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뿐이다. 아무개가 할 수 있고, 자신은 부족하단 이야기 같은 건 없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그 열정이 내 가슴엔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자연은 결과로 약속을 지키고, 그 증거물이 늘 같아도 매번 탄성을 지르게 하는데, 무심해 보이는 자연의 그 변화보다 더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호소가 오히려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변화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랬으면 좋겠다. 연일 세상을 메우는 열정의 하모니가 기적을 이룰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리고 난 그 변화의 의지를 믿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세상 속의 가득 배어버린 ‘열정의 바람’이 내 안에는 스며들지 않는다. 그저 내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고, 늘 그래 왔듯 내 역할을 감당할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이 비천하든, 고귀하든. 그저 내 깐에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변화를 위한 노래’가 내 귓가에서 더 이상 울리지 않고 먼지 날리듯 사라진다면 그땐 오늘의 이 상념이 그리워질까?
난 오늘도 별일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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