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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un 11. 2016

아이들이 어른의 거울입니다

가슴에 새길 현명한 답을 얻다

어른은 아이들의 이정표이자 삶이며, 또 거울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행위대로 모두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 한다는 것은 즉 학습의 증거이며 동시에 인성(人性)이 자라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아이는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고, 본 대로 따라 한다.’는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 것 같습니다. 백지와도 같은 아이들의 흡수력은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성격에 반영되니까요.



미운 4살, 미운 7살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본격적으로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고 아이 스스로가 제 기준을 만들어 싫고 좋음을 판단하기에 부모 역량만의 문제라고 보기엔 어렵겠습니다만 사실 이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역할은 참 중요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어른이 아이의 거울인 것을 입증하는 이유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은 이 같은 정설을 뒤엎을만한 자료가 하나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내내 언론매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퍼진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아픔과 힘듦을 마주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참 잘못된 행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 역시 이 같은 우를 범했습니다. 그런 적이 있는 저를 비롯한 다른 분들을 위해 변명 한마디 하자면, ‘세상이 참으로 힘들기에 기댈 곳이 마땅치 않아서’라고 하겠습니다.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지만 그것 또한 진실이기에 이해해줄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신 어른들도 계시기에 어느 학교 선생님 또한 학생들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마련한 질문 이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속에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사진은 굶주린 아이의 모습이었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지 형식을 띤 종이에는 처연한 사진 한 장, 지금 우리의 모습이 사진과 비교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해 보자는 지문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의 답변.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 주려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답변인지요. 저는 오늘 이걸 읽고 나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아픔을 같이 해결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죠. 부족함이 많은 영혼이지만 저 역시 이 같은 삶을 꿈꿉니다.



저는 이 질문을 낸 선생님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이야기이기에 그렇습니다. 다만 선생님과 같은 입장을 오랫동안 가졌었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현명한 답은 정말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어른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느새 불가능만을 이야기하는 때가 많아지고, 그걸 넘어 납득이라는 변명으로 소중한 것들을 잊진 않았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순수하다고만 치부하기에는 많은 걸 알려 준 이름 모를 아이에게 진심으로 글로 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



행복은 남의 아픔을 두고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닌 같이 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몇 번을 곱씹어 봐도 명언입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어른이 아이의 거울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의 거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전부터 쭉 그랬는지도 모르죠.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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