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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an 16. 2018

고길동을 위한 변명

서른아홉 번째 B급브리핑

<일러두기>

B급브리핑 글의 형식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님의 ‘앵커브리핑’ 형식을 참조하여 작성했으며, 더불어 이 형식을 빌려 집필하는 것을 앵커님께 허락받았음을 알립니다.



새해 첫 글을 B급브리핑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 소셜미디어, 특히나 페이스북 같은 경우에는 저만의 원칙이 담겨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이야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일이 그다지 흉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혹여 저의 성향을 드러냈을 때, 친구의 친구 분까지 보실 수 있기 때문에 혹여 기분이 상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맘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감정 표시방법의 원칙, 다시 말해 ‘좋아요’ 원칙입니다. 정말 유머러스한 글에만 ‘웃겨요’를 표하고, 나머지는 슬퍼요와 좋아요를 섞어서 표하는 편인데 유달리 ‘최고예요’를 소위 남발하는 게시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의 일상이 담긴 글입니다. 



인간의 존엄은 그 시기와 때를 가릴 필요가 없겠으나, 굳이 가장 큰 존중을 받아야 할 때를 찾는다면 아마 어릴 때가 아닐까요?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동과 언어는 어른을 위한 교과서인 것 같습니다. 그것대로 삶을 산다면, 이 세상엔 아마 행복만이 깃들 텐데 말이죠.



암튼 그런 일상이 담긴 영상이나 스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그러니 최고예요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아이 어머니의 극진한 정성과 무한한 희생이 선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릴 빌려 이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들은 어떤가 생각하게 됩니다. 근래에는 육아 대디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움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할 정도로 아버지들의 육아도 활발한 편이죠. 뿐만 아니라 아버지란 존재는 여전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평생 책임의 짐을 진 현실판 수퍼맨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롤 모델은 바로 방금 언급한 수퍼맨이었으나 생각해 보면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기에 절대 비교할 만한 인물이 필요했는데요. 엉뚱하게도 어렵지 않게 떠올린 인물은 김수정 작가 님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 속 등장하는 고길동이었습니다. 



<둘리>. 개인적으로는 질리게 봤다는 표현이 과언이 아닐 만큼 어릴 적에 많이 본 만화인데, 어린 마음에는 둘리와 그의 일행을 괴롭히는 고길동이 많이 미웠습니다. 괜스레 내는 역정, 인자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도 없는 냉혈한! 게다가 중후한 맛은 진즉에 버려버린 듯한 촐싹댐과 허당 끼.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의 이면에는 현생에선 승진이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조그만 회사의 만년 과장이라는 직함. 그리고 그런 그만을 의지하고 사는 세 살 연하의 부인 박정자, 공부와는 담을 쌓은 것 같은 철수와 영희까지. 어쩌면 이 상황만 보더라도 길동은 마치 군고구마 2개를 물 없이 삼킨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짐작 가능하듯 그의 성격상 타인에겐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터. 



그런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기공룡이 나타나고, 젖먹이 조카 희동이를 떠맡으며, 뒤이어 외계인 도우너와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또치까지. 



네 식구였던 가족이 급작스레 여덟의 대가족이 되는 부담스러운 기적을 목도한 길동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을 떠올리니 어릴 적 그를 미워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나중에는 그가 저지른 귀여운 악행(?)들이 애교로 느껴졌습니다. 



만화에 빗대면서 이야기가 가벼워지긴 했지만, 지금도 현실의 뉴스 한켠에선 친자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일이 횡횡합니다. 인간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으로 희생된 천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쯤 되면 친자만이 아니라 늦둥이라고 해도 믿을 어린 조카, 더불어 인간의 언변보다 뛰어난 3인조. 멸종된 공룡과 코가 빨간 외계인, 중구난방의 암타조까지 모두 거둔 고길동은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표창장을 수여해야 하는 위인이 아닐지……



오늘의 B급 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족을 하나 답니다. 

제가 어릴 적. 그러니까 <아기공룡 둘리>를 한창 재미있게 볼 그때만 해도, 장애 아동을 거리에 버리거나 시설에 맡긴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한 바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성장한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고 죄송해서 맘이 짠합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친자라는 이유로 진심 어린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님… 고맙습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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