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이야기 3
음악에 대해선 듣는 귀만 있을 뿐, 지식적으로는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음을 강조하고 늘이기 위한 페르마타(늘임표)가 없다면, 왠지 밋밋할 것 같다. 왜 글에도 기승전결과 쉬어갈 곳, 그리고 소위 ‘팡’ 터뜨릴 곳이 필요하듯이 음악적 요소란 것도 별반 다르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작금의 삶을 살면서 인생에도 페르마타가 존재함을 새삼 느낀다. 그 첫 번째 라이프 페르마타는 다름 아닌 코로나19다. 이 놈의 코로나19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만 해도 독감이나 메르스 정도의 바이러스일 거라 여겼다. 물론 메르스 자체를 당시에나 또 지금이나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그 공포스러움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당시도 지금처럼 스스로 조심하는 풍토는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메르스는 모두가 이겨냈다는 것. 이에 반해 코로나19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범죄자처럼 무차별적 공포를 뿌리고 다닌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녹록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큰 신음을 낼 정도의 고통은 아직은 없으니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숨을 쉬는 것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의 도움이 임하시고, 먹고 배설하는 거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같은 부모님 덕분에 원활하고, 뿐만 아니라 해야 하고 원하는 일들은 많지만, 못해서 아쉬울 뿐 아등바등하지 않을 수 있음은, 코로나 이전에 삶 가운데도 해왔고, 지금은 모두가 하고 있는 ‘(되도록이면) 자가 격리’의 모습처럼 살아서인지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축복(?)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아니, 두려운 페르마타가 있다면 올해 이후의 코로나 라이프다. 세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이니, 뉴 노멀이니 하는 말들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곤 하는데 사실 이런 말들처럼 초 장기화된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실은,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그 경계선은 어느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걸 겪어 본 이들은 모두가 알듯이, 2020년이나 2021년이나 똑같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진한 연애를 하다 헤어지기도 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이사라는 대사에 떠밀려 거주지를 옮길 것이다. 허나 이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 나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걱정하는 것이 뭘까. 곰곰이 생각하면 이것이리라.
모두는, 장기화되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생소했던 마스크와 벗을 삼고, 거리두기란 이름하에 관계들에 거리를 두고, 그렇게 거리 두는 간격마저 2미터의 규칙을 정한다. 난생처음 겪는 풍경에 구시렁대며 갖은 군소리를 했어도 결국 모두는 성숙하게 해냈고, 이겨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점부터다.
나는 과연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칩거, 혹은 인내가 아닌 조심하고 배려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어질 수 있는 관계란 게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난 지난날에 계속적으로 작금의 시간에 대비하라는 듯 훈련이 됐지만, 그 훈련에 입각한 에너지와 인내가 바닥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런 고백을 하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잠시 잠깐 바람이라도 쐐라든가. 아니면 만나러 갈 테니 기다리라는 반응.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두 가지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됐든 거리두기를 할 수 없어서다. 최대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 역시 사치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Corona Fermata…
코로나19로 집콕이 당연시되어가는 지금, 꽤나 열심히 잘 지내고 있다. 타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실재하며 여전하지만 많은 이들은 현재도 쉼 없이 일을 하고 유희를 즐긴다. 나 역시 그렇다. 내게는 글이 일이고, 유희 거리다. 두 번째 라이프 페르마타는 글쓰기이다. 내게는 아직 이른바 대박 작가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도 약하고, 또 꼴에 타인과 똑같이 가기는 싫어하는 탓에 자극적 표현이나 시원한 일갈은 하지도 못한다. 뭐, 워낙 겁보인 탓도 없진 않다. 전에도 언급한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인지 브런치 5년 한 것 치고는 형편없는 성적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독자 분들과 아낌없는 찬사로 격려해주시는 지인들께 늘 감사하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부끄러운 것은 책을 많이 읽을 것 같다는 칭찬 아닌 칭찬이자 색안경 아닌 색안경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방할까 봐서다. 글을 짓는 사람이니 글을 짓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 좋은 표현들을 마치 내 것처럼 쓸 거 같아서….
그런 부끄러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많이 안 읽는다. 이 세상 많은 책들에는 우주에 떠 있는 별만큼 좋은 표현들이 많다. :)
어쩌면, 내가 책을 많이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아무리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도 가끔은 기적이 영역을 넓혀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잘 알려진 작가들처럼 글이 유려하지는 않지만, 때로 사람들을 눈물짓게도 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그 과정만 페르마타처럼 쭉쭉 늘어나고, 그 이상은 없다. 혹자는 인생에서 늘 성공가도만 달리면, 오만해진다고들 한다. 그런데 한 번쯤은 오만은 고사하고 날개가 펴져야 사랑하는 것을 전심으로 대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데 있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코스를 밟고, 언제부터 그것을 했고 하는 외적 조건들이, 마음으로 사랑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우선시 된다면, 그 누가 진심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잘하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이것이 요즘 내가 겪는 쳇바퀴… 아니 두 가지의 페르마타들이다.
그리고 이다지도 길게 길게 지나왔거늘 돌아오는 것은 이것….
가끔은 김이 새기도 하지만 오늘도 다시 마음을 부여잡아 본다.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Photo by Marius Masala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