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한국 나이로 29살인
Mom is mom이라고 하던가 호주에 1년 동안 살다 오겠다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우리 엄마는 조금만 있다가 한국에 오라고, 힘들면 바로 오라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출국 전까지 내게 해댔다.
한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뒤로한 채 홀로 멀리(그것도 남반구인 호주로)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 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엄마의 안락한 그늘 안에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모든 일이 얼추 마무리되는 6월 말에 이렇게 도망을 가장한 독립을 호주로 하게 되었다.
우선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에 왔고, 대도시가 아닌 적당한 규모의 도시인 브리즈번에 정착을 했다. 사실 도착한 첫날, 나는 정말 매우 힘들었다.
아마도 그 힘듦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분의 전락이었다.
출국 전날까지 나는 학원 선생으로서 애들을 가르쳤고, 그에 따른 직업적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었다. 그들을 보는 게 좋았고, 가르치는 게 행복했으며 모든 일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호주에서는 그저 워홀러일 뿐이었다. 워홀러는 호주에서도 비거주자로 취급되니, 그런 상당한 괴리감이 나를 휩쓸어서 도착한 지 첫날부터 한국행 티켓을 알아보았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이것을 포기하게 돼버리면 나의 베타테스트는 실패로 돌아갈 게 뻔했다. 따라서 나는 최소 한 달만이라도 호주에 머물 것을, 살 것을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수많은 길 중에서 내가 고른 길이 정답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나의 몫이기 때문에 자신을 믿고 움직이면 방황을 하더라도 정답 근처에서 방황을 할 것이다.
가진 것 없는 내가 방황하기 좋은 시기인 지금, 마음껏 방황해보려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또 어떻게든 꾸역꾸역 굴러가는 것 또한 인생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