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의 재능을 찾고 싶어 지인들에게 나의 재능, 장점을 물어보고 정리해 봤다. 놀랍게도 다정함이 들어있었는데 내가 다정하다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사뭇 어색하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단어라서.
다정(多情) 초반과정
과거를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정말 다정했다. 굳이 다정해지려 노력하지 않았고 내가 베푸는 게 다정함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음에도 나는 다정한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 용돈을 쥐어짜 간식거리나 소소한 선물을 나눠주고 바쁜 수험생활에도 손 편지 쓰는 시간을 따로 두어 친구를 챙기기 바빴다. 하굣길엔 친구랑 헤어지기 싫어 서로 집에 몇 번이나 왕복하며 데려다주다가 밤이 늦어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당시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주변에 다정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그 정도의 다정함은 디폴드값, 순수한 여고생의 문화였던 것이다.
다정(多情) 중반과정
이후 성인이 되고 20대 초중반의 나는 참 다정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매정함에 가까울 정도로 차가웠다. 나의 다정함을 찾게 된 건 고향에 돌아온 이후 가족과 그때 만난 몇몇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과 다정함을 베풀었고 나에게 다정함을 받았을 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따듯함을 알려줬다. 사람에게 터득한 지혜와 깨달음은 텍스트로 배운 지식보다 휘발성이 없는지 내 속에 간직되어 조금씩 체화되었다.
최근에 다정함은 다시 나를 칭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물론 10대 여고생마냥 모두에게 다정하지는 못하는데 그러다 많이 다정하진 못할지라도 내면이 순수하고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다정해지고 싶다. 아무런 기대 없이 다정함을 받았을 때 느끼는 온기를 알려주며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감정이 있다고, 당신도 다정함을 몰랐을 뿐이지 충분히 다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