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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Sep 29. 2024

작은 글 하나, 첫 출간 에세이

서른,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작년 초 브런치 작가 승인이 떨어진 후 나는 브런치에 일기인지 에세인지 모를 뻘글을 신나게 쌓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친절한 이웃들이 작은 위로의 하트를 눌러주셨구나 하고 브런치에 접속했는데 이메일로 누군가가 제안을 보냈다는 메시지가 떴다.


'출간, 기고 목적으로 ㅇㅇ님이 제안을 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에 등록하신 이메일을 확인해 주세요.'


무려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된 문학잡지 '월간에세이' 편집장님의 원고청탁서였다. 학생시절 뼈아픈 보이스 피싱의 경험을 겪은 뒤 의심이 가는 이메일을 받으면 검색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다행히도 나처럼 브런치를 통해 월간에세이에서 청탁서를 받은 분들이 꽤 있었다. 내가 받은 이메일은 피싱이 아니라 진짜였다.


원고 조건은 2200자 내외 자유 주제의 에세이였는데 브런치 초보작가인 내가 한 주제로 짧지 않은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동안 주로 짧은 글들을 써나갔고 그나마 긴 건 서사성이 있는 개인적인 경험들 뿐이었다. 주제 선정은 더욱 마땅치 않았는데 월간 에세이 모토인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우리들의 인생을 담은 잡지'에 맞게 인생을 논하자니 연륜이 부족했다.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전문직 여성으로서 멋있는 현업 이야기를 써냈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현업에 적응 못해 하루하루 방황하는 이방인이다. 동기들은 하나둘 개원을 준비하며 한의사로서 발돋움에 우선이지만 나는 방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행복을 느낀다. 아무래도 난 히키코모리가 체질일 수도.



어렸을 적부터 궁금하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릿속엔 나는 누구인가부터 내가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들이 가득했는데 중2병 시절엔 미술과 클래식에 빠져 예고를 가겠다며 설쳐놓고 과목은 수학을 제일 좋아했다.


그러다 다행인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만 하는 아빠가 가여워 보였고 내가 공부로 성공해서 아빠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영웅심리에 빠져 학업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현실감각을 탑재하고 사회적으로 그럴싸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서른이 될 때쯤 무슨 호르몬 변화인지 하고 싶은 걸 취미 핑계로 야금야금 하기 시작하니까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걸 참는 방법을 까먹어버렸다.



하긴 요즘 같은 다원화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스트레이트로 그 일을 업으로 만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름 이름 있는 전문직 타이틀을 가진 뒤 제대로 방황하는 2030 젊은이의 얘기가 훨씬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땐 성공이 사회적 성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방황하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탐구하다 보니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이란 그저 나다움을 깨닫고 나다움을 실현시키는 것 같다. 지금은 딴짓에 열심히지만 그래도 나는 한의사라는 직업이 좋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직업을 갖기까지 내가 들였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경험했던, 경험하고 있는 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현재의 직업이 나의 마지막은 아니며 애초에 직업이라는 게 한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도 없다.



솔직하게 내 얘기를 끄적끄적 쓰다 보니 눈물이 나고 웃음도 났다. 내 심정을 끄집어내면서 숨어있던 나와 만날 수 있었고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점차 정립되었다. 글쓰기는 치유의 도구라는 말처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아 이런 기회를 주신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렇게 나의 작은 글, '다름으로 방황하는 우리에게' 하나가 월간 에세이 2023년 9월호에 실렸다. 편집장님께 부끄럽게 써 내린 내 글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울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앞으로 더 방황할 테지만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면서 살고 싶다. 아직 만나지 못한 자아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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