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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Oct 06. 2024

미술작가 첫 줄, 시작합니다

이력 첫 줄부터 쓸게요

그림을 그릴 색다른 도구를 찾다가 기름물감에 손을 데기 시작했고 어느새 묵혀왔던 표현욕구가 터졌는지 나는 주말은 물론 퇴근 후 저녁을 굶어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내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거나 그와 그 엇비슷한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전공자, 아마추어라는 딱지 밑에서 들을 수 있는 칭찬에 만족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10년 넘는 세월 동안 잊고 있던 어릴 적 꿈은 스멀스멀 의식 위로 떠올랐다.


중학생이던 나는 예고에 먼저 들어가 미대를 준비하는 언니를 보고 예체능에 엄청난 교육비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교육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불확실한 미래도 덤이며 5살 아래인 막내는 당시 너무 어려 보였다. 아빠는 세상에서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이라 나는 어릴 적부터 아빠에 대한 애틋함이 컸고 밤낮으로 일하는 아빠가 안쓰러워 무엇보다 공부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난 이유가 어찌 됐든 배운다는 것을 좋아했고 곧 빠져들었으며 입시가 원하는 요지도 잘 파고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웃기게도 부모님은 알아서 잘 지내시고 나는 매일을 여행하는 딸이 되었다. 많이 많이 늦었지만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 어릴 적 또래보다 철이 빨리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철이 들지 않아서 어쩌면 가장 철없는 어른이 돼버렸을지도.


공모전 사이트를 뒤지다가 서초문화재단, 서리풀 청년 아트 갤러리에서 주관하는 서리풀 청년 아트 마켓 공모를 찾았고 만 39세 이하 청년작가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했다. 다행히 나는 청년에 속했지만 나름 부지런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서 이력사항에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당하게 지원서를 제출했다.



공모전에 선정된 후 살펴보니 학력, 경력 한 줄 없이 텅 빈 건 나뿐인 것 같았는데 감사하게도 작가 이력이 하나 없는 내가 이름 있는 작가님들과 한 공간에서 첫 전시를 할 기회를 얻었다. 전시기간은 단 3일이었지만 나는 그 기간 동안 조그만 순간들을 빠짐없이 담기 위해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갤러리까지 몇 번이고 돌아다녔다.



비슷한 시기에 관악문화재단 예술상점 공모전까지 선정되어 설렘을 숨기지 못해 유난 좀 떨었는데 정말 개인전 부럽지 않은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부산, 경기도 곳곳에 흩어져있는 하나뿐인 가족들과 고등학교 친구, 독서모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까지. 겨우 그림  점을 보기 위해 먼 걸음 달려와준 따스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방황 좀 하면 어떠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된 주변 사람들은 물질을 내세워 과시하기 바빴고 머릿속으로 그에 따라 급을 매겼으며 그들이 원하는 한의사 딱지에 걸맞지 않게 방황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쓸모없음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내 삶이 재밌고 앞으로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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