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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Oct 13. 2024

백수 한의사의 미술작가 도전기

소속감에 대하여

그동안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태하진 않았지만 도전정신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통찰력은 자꾸 줄어들었다. 매일같이 기회비용을 따져봤는데 애초에 인간은 효율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종족이며 효율적인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다면 방법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작업에 집중했다. 지금의 생각이 바뀌고 바뀌어 또 다른 생각을 낳기도 하겠지만 일단은 나를 많이 실험하고 나답게 충만해지는 법을 알아가고 싶었다. 퇴사 후 독서모임 외에는 타인과의 약속을 거의 잡지 않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작업만 했다. 수익은 없지만 온종일 작업을 하고 있으니 전업작가가 된 기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시기회를 주는 광화문 국제아트 페스티벌 공모전에 당선되어 아직 신진작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내 그림이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세종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 스무 살 서울에 놀러 와 광화문을 처음 봤을 때의 웅장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월드컵도 안 보는 주제에 광화문에 오면 없던 애국심이 생기는지 마음까지 경건해진다.



공간이 공간이니만큼 설레서 백수가 거금을 들여 처음으로 표구까지 했는데 뿌듯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주셨다. 날이 갈수록 시간이 금이라는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 바쁜 와중 짬을 내서 전시를 보러 와준다는 건 웬만큼 마음이 따듯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6일 동안의 짧은 전시 기간 동안 무려 꽃다발을 3개나 받았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애정하는 독서모임으로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식을 모두 가지 않아 어릴 적 꽃다발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아무래도 나는 여러 복 중에 인복이 제일 많은 게 분명하다.


주변에서 역마살이 낀 것 같다고 의심할 정도로 여행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 어디서도 소속감을 못 느끼는 내 모습이 조금 의문스러웠는데 그래서 여행지가 편했는지 모르겠다. 혼자 여행을 가면 우린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얻어 어딘가 당연하게 소속되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홀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함에서 오는 소외에서 해방된다.


최근 가족이 아닌 공동체에서 일을 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어딘가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이렇게 따듯한 감정인 줄 몰랐다. 단단한 생물체가 아닌 단단한 인간(人間)이 되고 싶다면 사람 사이를 뜻하는 인간답게 사람들 곁에 머물러 마모되어 가는 나를 직시할 줄 알아야 했다. 오만하게도 오랜 세월 강인해지기 위해 이러한 감정들을 나약함으로 여기며 멀리해 왔지만 오히려 이제야 그토록 지향했던 단단함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것 같다. 덕분에 나의 부족함을 꾸짖기보다 그대로 비워두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소속감이란 나에게 어려운 감정이지만 요즘 바뀐 소속감에 대한 소고를 풀자면,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그 누구도 완전한 소속감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 속으로 나를 내던지면 내가 선호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찾을 기회와 함께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커진다. 그게 나의 아주 작은 일부일지라도 그런 경험들이 쌓여 나의 다양성을 만나 공유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소속감이나 동질감, 그 엇비슷한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미숙함에도 작은 가치를 발견해 주고 나의 악함이 삐져나올 때마다 선함을 이끌어주는 예술과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감히 갚을 수 없는 따듯함을 언젠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정성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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