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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Oct 24. 2024

다름으로 어울리는 방법

참된 어울림이란

백수로서 전업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몇 개월이 흘러 한 해가 지나고 나니 작품이 제법 쌓였다. 따뜻한 봄을 알리는 벚꽃이 필 무렵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던 와중 운이 좋게 아트마켓 단체전에 선정이 되어 북촌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언니는 어김없이 다채로운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올해 유독 친해진 작가님께서는 귀여운 토끼인형을 선물해주셨다. 게다가 갤러리가 벚꽃으로 유명한 정독도서관과 가까운 덕분에 전시를 본다는 핑계로 벚꽃놀이까지 갈 수 있었다.

 


* 본능(本能)_oil on canvas_45.5x37.9_2024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모호함과 정체성의 아득함은 늘 나를 부추겼고 나는 홀린 듯이 무언가에 몰입되었다. 그렇게 찾은 무엇으로 내면을 끄집어내어 존재를 증명하려는 건 우리에게 마치 본능과 비슷하다.



* 사랑(愛)_oil on canvas_45.5x37.9_2023


사랑이란 한 사람의 외모나 조건, 성격의 한 부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역사, 살아온 인생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이해받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고 이해할 수 없을 때 떠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길 바라는 게 사랑일까. 이건 사랑을 주지 못한 채 받기만 바라는 이기심일 뿐이며 상대방의 이해하지 못함을 이해하는 것도 사랑이다. 정리하자면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함과 이해하지 못함을 조율하는 노력 중에 지속된다.


삶을 돌이켜보면 사랑과 그다지 가깝지 않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맞대는 세상과 내가 마주하는 사람의 서사를 이해하고 사랑을 말하고 싶다. 그동안 크고 작은 죽음을 마주하고 맞닥뜨리며, 죽음의 두려움은 부와 명예가 아닌 소중한 존재와의 단절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은 사랑의 의미에 따르면 나는 생각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 어울림 2(調和)_oil on canvas_53.0x45.5_2023


우린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 n극과 s극이 반대되는 자성에 끌리듯 모든 게 비슷하기보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서로의 결점이 보완되어 좋은 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완전히 다른 성질과의 결합은 오히려 파괴적이다. 친숙함과 새로움이 적절하게 섞인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 이를 우린 맞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관계에 있어 대개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서 깊어지기 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음이 아닌 다름으로 시작된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선호보다 불호의 에너지가 크기에 다름 속의 같음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같음 속에서 다름을 발견할 때의 이질감이 우리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음만을 찾으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다름을 인지하고 수용하려 드는 게 점차 긍정적으로 인식되기 쉽다.


여기서 재밌는 건 관계 외에도 세상 모든 일에 이처럼 '맞는다'라고 여기는 자기만의 포인트가 있으며 이것을 찾는 게 어쩌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세상에 필요한 일, 안정과 변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이 이러하다. A와 B 사이의 접점을 찾는 확률을 높이는 데 필요한 건 1. A 또는 B의 파이를 넓히거나 2. 접점을 겨냥하여 던지는 횟수를 늘리는 것. 덧붙여 전자든 후자든 하나가 0이라면 결과도 0이다.



* 피날레 2(終幕)_oil on canvas_45.5x37.9_2024


나의 다름을 마구 드러냄으로써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의 멋지고 아름다운 다름을 공유받을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같음만 찾으며 역설적으로 성숙과 멀어지는 어른애가 될 뻔했다.


나다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수용할 수 있는 다름을 경험할수록 내 세계가 넓어지고 성숙해진다. 다름의 정도와 종류는 다를지라도 그로 인해 느낀 감정은 사뭇 비슷할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나다움을 공유하며 위안을 얻는다.






이질감이 미우면서도 다름으로 존재하는 나다움을 놓기 싫어 자아를 격리시키기 바빴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공유하다 보면 다름은 더 이상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참된 어울림이란 다름을 지우며 동일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율을 통해 인정을 넘어 서로를 포용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좋은 인연들이 기꺼이 내면을 내어준 덕분에 사람은 무언가 되어가는 존재임을 실감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차근차근 교차하는 세계를 구축하여 아직은 미숙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내면을 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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