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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21. 2023

나는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맞서 싸웠다

시어머니의 종교강요





"아니, 네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니까? 결혼하기 전에 세례를 받았어야 했어. 걔는 세례 받고 결혼했었는데...(중략)"



시어머니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세계를 모르는 내가 안타까워서 종교강요를 했다.

그것도 전 며느리도 받았는데라는 말을 굳이 꺼내시면서







최근의 일이다.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나의 뜻이 받아들여지면서, 시댁을 향한 나의 억울한 감정이 풀렸기에 올 3월부터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어제 성당 친구의 아들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내 아들보다 어린 사람이 그리도 허망하게 가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못해 아렸다.."



"네, 어머님 상심이 크셨겠어요.."



시어머니는 평소 수다가 많은 편이었고, 나는 늘 다 들어주는 며느리였다. 시아버지도 아들도, 딸도 모두가 시어머니의 소소한 이야기를 바쁘다는 핑계로 들어주질 않으니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번 전화도 그저 수다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종교얘길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이번엔 정말 너에게 세례를 받으란 얘길 해야겠구나. 그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으니 이리 전화를 했다."



"00 아빠에게 못 들으셨어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간 종교문제로 수 없이 다투었고 협의이혼 서류까지 썼었기에 나의 뜻을 시댁에 전달한 줄만 알고 있었다. 남편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그 어떤 종교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아내에게 성당 다니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도.



또, 나에게 요구사항이 많던 시어머니도 더 이상 요구를 하지 않게 된 것이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다.


나에게 요구를 할 때마다 아들이 가서 또 이혼하는 꼴을 기어이 보셔야겠냐고,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 하니 잠깐, 멈춘 것뿐이었다.


그리고 때가 때이니만큼 회사가 파산했고, 집이 경매에 붙여졌고, 급하게 이사를 가야 했음에 본인들 일이 급하여 며느리에게 요구를 할 만큼 마음이 한산하질 않으셨던 거였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구나. 네가 이제 우리에게 마음을 연 것 같은데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코로나로 못 받았다지만 이제 둘째도 세례를 받아야 하지 않겠니? 네가 세례를 안 받으니 내가 곤란한 상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요? 어머님, 저는 아이아빠가 제 의사를 전달한 줄로 알고 있었기에 당황스럽네요. 저는 종교를 가질 마음이 없습니다"




"아니 너는, 차라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기다려달라고 하지, 딱 잘라 아니라고 하니? 나는 이 나이 먹어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인데,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 알았겠니?"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마자 시어머니는 반격하듯,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듯이 놀라셨을 거다.



지난 7년간 매 주말마다 시댁과 밥을 함께 먹었으며, 매번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하고 할 줄 아는 말은 "네, 어머님" 뿐이던, 늘 시어머니 얘길 웃는 얼굴로 들어주던 며느리가 처음으로 본인이 하는 말에 거절을 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나는 시어머니가 부당한 말을 해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고, 속절없이 당한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결국엔 속이 곪아터져 남편 뒤통수를 때리듯 모으고 모아진 화를 남편에게 내뿜고는 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결혼한 사람은 남편이지 시부모님이 아니기에, 적어도 내게 '어른'인 시부모님께 예의 없이 대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살기 힘들어지게 만들더라도 어른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의 부모님이기에, 이것을 못 견뎌내면 이혼을 하는 거라고. 견뎌낼 수 있으면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거절 의사를 남편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시어머니에게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남편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내 인생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네, 당연히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죠. 저도 알아요 어머님, 가족 중에 친부모를 잃어본 건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저에게 친구분 아들이 돌아가셨다고 종교 강요를 하시면 안 되죠.. 제가 언젠가 종교를 가질 수도 있겠죠. 그것이 불교일지, 천주교일지, 개신교일지 저도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기다려달라고 하나요? 저는 어머님께 거짓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얘! 너는 어떻게 천주교 집안에 개신교 얘길 꺼내니! 그리고 시아버지가 천주교 집안이고, 매일같이 기도방에서 기도드리고, 작은아버지는 신부님인 집안에 시집와놓고 네가 며느리로서 도리를 해야지! 이게 강요니? 아버지, 아버지가 말해도 너, 이게 강요라고 생각하니? 네가 천주교 집안에 시집왔는데, 이게 강요니?!"



"어머님, 결혼을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세례 받는 것을 요구하셨잖아요. 어머님이 아들 걱정해서 하는 말을 아들은 잔소리로 생각하고 싫으면 싫다 말할 수 있어요. 듣는 아들도 말하는 어머님도 상처받지 않아요. 저도 그래요. 저도 친정엄마의 잔소리에 거절을 해도 서로 상처받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님, 저는 며느리잖아요. 어머님이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뜻에서 말씀하시는 건 알겠지만 어머님께 좋은 것이 저에겐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거절을 했는데도 계속 요구하는 건 강요가 맞아요 어머님"  




"아니, 네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니까? 결혼하기 전에 세례를 받았어야 했어. 걔는 세례 받고 결혼했었는데.. 네가 결혼할 때 세례 받고 하라 했으면 하지 않았겠니? 나도 너의 시아버지랑 결혼할 때 신뢰가 있어서 세례 받고 한 거 아니다. 세례를 받고 결혼했지"




"어머님, 그랬다면 제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의 결혼은 선택지가 없으셨다지만, 저의 결혼은 제가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의 허락이 중요했다면 제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겠어요?"




'걔'는 바로 시어머니의 전 며느리이자 내 남편의 전 부인이다. 시어머니는 70대이신데, 본인 결혼하실 때를 들며 나에게 설명하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인의 딸보다 11살이나 어린 나에게 시어머니는 늘 나를 딸보다 어린 사람이 아닌, 본인 며느리시절과 비교하곤 했다.




"너는 네 남편이 홀아비도 아니고, 성당에서 네 남편은 지금 결혼을 안 한 상태야. 너네는 인정받는 혼인관계가 아니라고!"



"어머님, 저희는 법적인 부부입니다. 성당에서 부부인 것이 법적인 부부인 것보다 중요한가요? 성당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저희 사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첫 아이가 다니는 성당유치원에 부모 중 한쪽만 신자인 집 많아요. 애들 아빠가 그렇다고 바람날 사람도 아니고, 저 또한 아이 둘 놔두고 바람피울 사람도 아니에요."








남편은 전 부인과 법적으로 이혼하고 일 년 반 정도 후에 나를 만났다. 성당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혼배라는 것을 하고, 성당법 안에서 부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인데, 이혼이라는 절차가 없어서 혼인무효소송을 해야 한다.


남편은 나와 결혼을 하고 나서 혼인무효소송을 시작했다. 이혼 후에 여자친구를 일 년 넘게 사귀어 왔음에도, 그 여자친구는 같은 천주교 신자였는데도 남편은 그 혼인무효소송을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았었냐고 물으니 했던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할 땐 성당법 안에서 부부로 인정받는 일이 시댁에 중요한 일일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편에게 중요한 일 같아 보이진 않았다. 법적으로 이혼하고도 매주 성당을 여자친구와 함께 다녔을 텐데도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남편은 그 혼인무효소송을 하는데 일 년이 넘게 걸렸으며, 내가 첫 아이를 낳고 나서야 승소하게 되었다.








임신 전부터 시댁을 매 주말마다 만나온 거며, 비신자인데도 매 주말마다 성당 가서 미사 본 거며, 할 만큼 한 걸 남편은 알고 있다. 그런데 시댁은 상황이 조금 정리되고 며느리가 살갑게 다가오자 마지막 굳히기에 들어갔다. 이제 세례만 받으면 된다고 말이다.



시어머니는 내가 말이 안 통한다 느끼신 건지, 급 태세를 전환하여 아들이 불쌍하단 얘길, 굳이 전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걔가 얼마나 못된 앤지 아니?  일하고 술 먹고 들어와 자고 있는 애한테 얼음물을 끼얹고, 매일같이 남자들이랑 술 마시고 다니고, 바람까지 난 애야. 내가 오죽했으면 이혼하라고 했겠니? 근데 '엄마도 아버지와 평생 싸우고 사시잖아요. 나는 이혼 안 해요' 하던 게 내 아들이야!"



도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이런 얘길 꺼내신걸 까 싶었지만,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말들을 들었다고, 시어머니 앞에서 꾹 눌러 참았다가 남편에게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내 감정이 꽉 찬 쓰레기통이 되어 꾸역꾸역 흘러넘치기 전에 당사자에게 이제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님, 남편이 전 부인에게 받은 콤플렉스를 제게 어떻게 풀어내었는지 모르시죠? 전 부인은 남편을 전혀 챙기지 않았던 터라, 저는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남편보다 늦잠을 잔 적이 없어요. 아침마다 출근길에 먹을 음식을 만들고요, 저녁에는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도 주질 않았어요. 제가 첫 애 임신했을 땐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손가락으로 먼지를 쓸며 청소를 운운했고요, 집에 있던 식기세척기도 못쓰게, 만삭인 산모에게 손 설거지를 시켰어요. 그 일들은 남편에게 사과를 받았습니다. 어머님 아들이 전 결혼생활로 피해를 봤다고요? 그 피해, 저에게 고스란히 다 왔어요. 그러니 제게 아들이 피해봤단 말, 그만하세요."



분명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종교를 권유하기 위해 꺼냈을 텐데, 아들을 불쌍하게 여겨서라도 세례를 받으란 말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일 텐데, 최근에 남편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면서 시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내어주었던 마음이, 내게 더 침범해 올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격이 되었음에 지난 7년간 참았던 인내심이 여기서 터져버렸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밟히면 이런 식으로도 꿈틀거릴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네 남편이 종교인으로서 네게 모범을 못 보여서 그러니? 나를 봐라. 아버지가 모범적이어서 내가 종교를 믿겠니? 너도 나처럼 결혼 전에 세례를 받았으면 이럴일이 없을 텐데, 네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야 더 큰 세상을 볼 거란 얘기다. 내가 정말 안타까워서 그래. 성당에 얼마나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줄 아니? 대법원 판사 아내며, 변호사며, 의사며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 또 봉사도 얼마나 많이 하러 다니는 줄 아니?"



"어머님, 저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매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재활원에 가서 장애인 환우들 씻겨주는 봉사하면서 꾸준히 후원해 왔어요. 또, 결혼 전에 인체조직기증과 장기기증도 신청해 놔서 저의 면허증에 나와있고요. 남편도 저에게 기부, 봉사얘길 자랑하듯 하기에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게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요 또, 종교를 믿는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어머님, 저, 종교는 믿지 않아도 스스로 옳은 일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장작 한 시간 사십 여분 동안 한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끝이 났다.




처음이었다. 할 말을 어른에게 지지 않고 내뱉었던 것은. 7년간을 꾸역꾸역 소화도 못 시키고 담아두었던 것이 이렇게도 터지는구나 싶었다.




여자이던 나는 겁도 많고 평화주의자였지만,

아이 둘의 엄마이자 내 남편의 아내인 나는,

나의 감정관리가 가족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더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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