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 That Jan 14. 2018

우리, 술 없이 놀 수는 없나요

네, 놀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여섯 살 때, 이모 집에서 놀다가 이모부가 맥주를 권하신 적이 있었다.


"껄껄, 너도 한 번 마셔볼래?"하시며 맥주를 들이키시던 이모부의 농담.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나는 잽싸게 맥주캔을 붙잡았고, 생전 처음 맛보는 느낌에 이런 걸 왜 마시냐고 앵앵거렸다. 술담배 없는 건전한 청소년기의 시작이었다.


그 작은 기억으로 알코올은 안 마신다고 버티길 14년.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술 없이 지내는 게 목표였다.


금주가 네 마음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성인의 세계는 참으로 냉혹했다. 이전엔 맨정신으로 PC방 가서 게임하던 친구들이, 어른이 되자마자 볼빨간 모습으로 술게임을 사정없이 돌리는 게 아닌가. 나는 인생 최고의 집중력으로 그들의 요구를 뿌리쳤다. 듣도 보도 못한 게임에도, 처음 보는 룰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눈 앞의 잔을 비우지 않았다.


"아니 무슨 여섯 살 때 술 마신 게 아직까지 가냐?"


패배를 요리조리 피하는 나를 친구들은 상당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들은 하루 날 잡고 나를 조지고자 도원결의를 맺었고, 그렇게 나는 술에 굴복하고 말았다. 첫 경험이자 첫 패배였다.


이제는 어떻게든 술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몸이 되었다


나는 그 날의 느낌을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세 번의 구토, 잃어버린 맨정신, 그리고 깨져버린 안경. 참상이었고 다시는 있어선 안 될 비극이었다. "술 취한 느낌 좋지 않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미쳤냐며 노발대발 하던 나. 그렇게 나는 점차 술을 받아 들였고, 이제는 술 없인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는 나는, 언제나 한국으로 돌아갈 방학을 기다린다. 왠지 모를 안정감이 언제나 몸을 휘감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고충 중 하나가 바로 술인데, 한국에서의 내 음주 빈도는 해외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태생부터 알코올을 거부했던 나의 몸. 그 천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디 가지 않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맥주 한 잔만 마셔도 홍조를 띄우며, 소화가 안 돼 소리 없는 트름을 수백 번 반복한다. 소주 한 잔이라도 마시는 날엔 머리가 띵하고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나 내가 술을 거절할 수 없는 건, 한국에서는 술이 모든 관계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술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반가움을 보조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조합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수단. 술의 개입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부드럽고 윤택하게 만든다. 허나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왜 우리는 머리가 띵하고 얼굴에 붉은 빛을 띄운 뒤에야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소주는 진짜 못 마시겠더라

술자리에서 술을 받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 상당한 용기를 요구한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체재를 따라주는 고마운 분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왜?"라는 물음을 동반하며 금주를 특이행동 취급한다. 술잔을 슬쩍 숨기다가 걸려서 웃음거리가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이행동으로 규정된 손사래는, 결국 언제나 설득의 대상이 된다.


"에이~~~ 좋은 자리인데 계속 짠 해야지~~"

이건 약과다. 가장 악질적인 설득(?)은, 잔을 든 팔을 휘청이며

"어... 어엌... 무겁다! 무거워!!"


라고 잔을 강제로 내미는 경우다. 옆 사람은 "이게 술자리의 묘미 아닙니까?하하"하면서 내게 눈빛을 보내고, 나는 그러면 마지못해 잔을 내밀곤 했다. 그러고 잔이 무겁던 사람은 꼭 한두 시간 쯤 뒤에 구토를 했다.


거절이 대쪽같지 못한 나는 설득을 마다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동생이 잔 무겁다고 너스레를 떨 때도 그랬는데, 하물며 연장자가 잔을 권할 때는 어땠겠는가. 그 잔이 소주라면 내재된 긍정감 또한 사라진다. 옛 과학시간 알코올 램프를 연상케 하는 소주는, 반병 정도 비우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업적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협상안으로 항상 '소맥'을 내밀었다. 좋은 자리에서 내미는 순수 맥주는 약간 염치없는 느낌이라 비율 높은 소맥을 내세우는 것이다. 나는 점차 알코올에 적응했고,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봐봐. 술이 늘고 있지 않냐"며 만족스러워 한다.


마시기 싫은 술을 왜 늘려야 할까?


나는 맨정신에도 우정을 달래고 갈등을 해결할 자신이 있다. 술은 용기의 주춧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놀 때도 맨정신에 더 잘 놀며, 진심을 털어놓을 때도 맨정신이 더 좋다. 술은 인내의 말로다. 취기가 오르면 자제력을 잃을까 두렵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어지러움 또한 싫다.


술 취한 기분이 좋지 않느냐, 는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언제나 구준엽 브라질리언 왁싱하는 소리하지 말라고 대응해 왔다. 술에 취하면 내 몸은 자제력을 잃고 표류하며, 집에서도 정신이 아득해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진다. 불쾌함과 찝찝함으로 하루를 허무하게 마무리 하는 것이다. 아침에도 메스꺼운 속을 달래다 보면, '난 무엇을 위해 계속 잔을 비웠는가'하는 회의감이 든다.


만취로 다진 우정이 맨정신에도 유지될 수 있다면, 술 없이 우정을 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술에 적응한 몸이지만 더 이상 강요로 잔을 기울이기는 싫다. '좋은 자리'에선 내 나름대로 좋은 자리를 기념할 것이고, 그게 술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맥주가 한계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다섯, 꿈이 사라지는 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