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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Nov 17. 2019

오드 아이 섬

배달의 마녀 기행기 - (9) 무아의 배

어쩌다 또 파란색 철 지붕 아래 섰다.   

백발의 난쟁이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오래된 나무 타륜이 보트 밖에 나와 있다.

 

텅 빈 컨테이너 박스를 바람이 제 집인 양 드나든다.

넉살 좋은 바람은 내 몸 안도 자유롭게 드나든다.

컨테이너 옆에 버려진 비닐우산 하나가

비를 후들후들 맞고 있다.

우산을 폈더니 아가미를 세차게 펄떡인다.


나는 반쪽 우산을 코에 쓰고 노인이 걸어갔던

서쪽 해변으로 걸어 본다. 빗방울이 빽빽해 오도 가도 못한 내 숨들이이제야 편하게 들락인다.


빗줄기가 끊어진다.

비와 땀과 눈물. 세 박자의 호사로움이 바위 절벽 앞에서 딱 끊어진다.

나는 관절이 다 꺾인 비닐우산을 뜯어

그곳에 펼쳐 앉는다.

뺨따귀를 시원하게 갈겨주는 바람.

눈꺼풀을 덮어주느라 정신없는 머리카락.

그 사이를 가르고 나타난 저것은

검은 갓 아니 검은 닻

'고래다.'

향유고래가 왔다던 노인의 비장한 괴성이 떠오른다.

고래의 검은 꼬리가 감질나게 보인다.

침을 크게 꿀꺽 삼키고 고래의 꼬리와 꼬리를 물어본다.

'어디 갔지? 내 앞까지 왔는데'

눈 앞에서 놓쳐 초조하다.

갑자기 "우르렁 우르렁" 하는 굉음이 들린다.

나는 놀란 거북이 마냥 엎드려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다가 대장간 망치 같은 네모난 턱을 해변에

괴고 토를 하는 고래를 발견한다.

희고 투명한 껍데기가 고래의 얼굴 앞에 무덤처럼 쌓인다.

지독한 사향 냄새가 주변에 진동을 한다.


'... 고래다. 향유고래!! '

고래가 배꼽 같이 생긴 눈을 쓱 올려 본다.


'향유고래다! 세상에나! 고래를 보다니. 지금 허물 옷을 뱉는 건가? 그럼 여기가 우주인가?'

심장이 쿵쿵 쿵쿵 미칠 듯이 요동치다 수십 개의 물음표 갈고리가 내 입을 당긴다.

"너 향유고래야?.."

고래의 눈 밑이 불룩해진다.  

"여긴 우주가 아니야. 나는 방향을 잃었을 뿐야."

향유고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한다.

"왜?.."

"나는 분명 심해로 들어가야 하는데 수면 위로 올라와 버렸어.

자기장 교란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응.. 아파 보여."

그가 바닥에 침을 흘리며 말을 한다.

"오늘도 세 친구가 죽었어. 어제는 더 많이.

 나는 요즘 자꾸 방향을 잃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말이야."


고래는 커다란 꼬리로 바다를 내리 치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분수대의 물줄기가 여기까지 미스트로 뿌려진다.

나는 절벽에서 내려와 그의 턱이 있었던 곳을 보며

똑같이 턱을 놓는다.

고래의 왕 무덤이 이 정도일까.

미끄러운 점액질의 막들이 산처럼 쌓여 흐물거리고 있었다.

그때 파도가 쓰나미 높이로 토사물 무덤을 덮치더니

투명한 막들만 싹 한 번에 삼켰다.

남겨진 무덤에는 일회용 용기와 비닐봉지, 페트병, 빨대.

썩지 못해 변종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향유고래는 원치 않는 것까지 삼키고 있었다.

삼키고 내뱉는 것에,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독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고래의 숨이 죽어가고 있다.


우주의 수송선인 향유고래들은 언제까지 인간들의 허물 옷을 날라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바다의 생물이

슬픈 눈동자를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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