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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Dec 31. 2022

아빠랑 방 청소를 한다

소소한 일상

아빠랑 방 청소를 한다




2층 청소 마치고 5시까지 힐링시간!

고성 강풍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서

도착한 앤 카페

고성집에 올 때 앤 카페, 고성빵가 카페를 자주 간다.

계속해서 바다 쪽엔 예쁜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크림브륄레가 먹고 싶어서 앤 카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불고기 요리를 하고 예약손님이 있어 나갈 준비를 한다.

아빠와 둘이 2층 퇴실한 방청소를 시작했다.

손발이 잘 안 맞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척척 맞는다.


아빠가 화장실, 방 쓰레기를 비우는 사이

나는 이불 커버를 벗긴다. 강아지와 함께 방문한 방은 여실히 표가 난다.

어떤 강아지였는지 본 적 없어도 알 수 있다.

4번 방의 강아지는 까맣고 짧은 털을 가진 귀여운 강아지일 거다.


방은 1번부터 4번 방이 있다.

어느 시기부터 번호가 붙여졌다.

바다방, 노을방 같이 내 감성 같으면 이런 식으로 짓고 싶기도 하다.

소통이 잘 안 된 적이 있어서

큰 방(큰 방은 1개뿐이다)

바다 쪽 작은 방, 보일러 방이라고 부르면 가장 혼선 없이 확실하다.


커버를 다 벗기고 청소기로 방을 구석구석 미는 사이, 아빠는 새 이불 커버를 들고 온다.

함께 이불 커버를 협업해서 끼운다.

이전에 잘 못한다고 혼난 적이 있는데 이제는 능숙하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어릴 때부터 뭘 배울 때 혼나며 배운 적이 많았다. 혹시 내가 잘못 건드렸다가 혼나면 어떡하지? 자주 혼나며 자란 아이는 행동이 위축되고 남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부모님들께 : 아이에게 인내심을 갖고 잘 못해도 혼내지 말고 알려주세요..)

아빠 딴에도 답답해서 그러셨겠지만.

어릴 때는 혼나는 게 너무 무서웠다.


일은 하면 할수록 는다.

아빠가 수건과 휴지 등을 가지러 다시 내려간 사이 나는 방을 깨끗하게 닦고 싱크대, 화장실을 청소한다.


"은이야. 내려올 때 방문 꼭 닫아야 된다."

"네~! 마무리하고 갈게요."


아빠는 할 일을 마치고 내려가서 빨래를 세탁한다.


나는 싱크대에 음식물찌꺼기가 있는지 확인하고

화장실 거울, 변기, 바닥 청소와 머리카락을 치운다. 창틀과 가구의 먼지도 닦는다.


오래된 민박집이라 방문객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 하지만 아담하고 깔끔한 방을 보며 만족해하는 손님들이 많다.

이건 엄마 영향이 크다. 엄마는 정말 먼지를 싫어하기 때문에 깔끔하게 청소한다.

엄마는 차량 탑승 전 아빠와 내가 청소한 2층 방을 둘러본다.


두근두근 합격인가.


"은이야."

"네?!"

"화장실 변기 뚜껑은 덮고 싱크대 얼룩이랑 물기 닦아야 돼~"


매의 눈 엄마.


"알겠어요!"


엄마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이만하면 합격이다.

화랑 짜증 섞인 말투일 때는 엄마도 이유가 있다.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때그때 반응이 달랐다.

어떤 날은 부드럽고 어떤 날은 짜증 내고 비난까지 하면 혼란이 온다.

아이는 일관적인 반응과 양육에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불안으로 고생한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나도 엄마를 닮았다. 가급적 일관된 태도로 지내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될 때가 있다.

기복이 심해서 내 성격은 왜 이럴까 자책한 적도 많았다. 명상과 108배를 하면서 많이 나아진 게 지금의 모습이라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조금 더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다짐해 본다.


지금에야 2층 방 청소를 나랑 아빠랑 하고 있지만, 20년 간 엄마 혼자 일과 살림, 2층 청소까지 전부 도맡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상황에 그 모든 걸 다 하신 엄마가 지금은 웬만한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록 너무 바빠서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많지 않은 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때론 부족하더라도 따듯한 관심과 애정을 나누는 것이 살아가는 힘을 더 단단하게 키워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쁘더라도 관계와 사랑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게 된 이유가 있다.


당장은 돈을 더 버는 게 이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멀리 보면 살아갈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 사랑을 주는 것이 행복한 삶을 꾸리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정표현은 많지 않았지만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신 것도 큰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한다.

그땐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그것 또한 정말 큰 사랑이다.


앤틱한 분위기, 크림브륄레, 꿀차, 꽃, 나무 책상, 햇빛, 공책, 펜, 책

내가 좋아하는 것이 몇 개나 있는 이 공간 안에서 2시간 동안 편안함을 누려본다.


(글 쓰는 사이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5시까지는 큰 방 방문객이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12시가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감사한 맘으로 누려본다.


혼자 있는 이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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