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고향 가지 않기
코로나19로 민족의 대명절 추석에도 고향에 가는 것이 께름칙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결혼 7년차, 나는 시댁에 가고 싶기도 하고 가기 싫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오지 말거라
가뭄에 콩 나듯 전화를 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온 전화다. 시댁은 내비게이션 거리 400km 이상 떨어진, 명절이면 차로 8시간 이하로 도달해 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명절이면 시댁에 가고 싶다. 정말 너무 자주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을 테다. 그리고 부모님도 자식이, 손녀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시댁에 가고 싶다.
그리고 시댁에 가고 싶지 않다. 특별히 괴롭히지 않아도 시댁은 불편한 곳이다. 내 집이 아니어서도 그렇고, 시댁의 식구들과 오랫동안 다른 가치관 속에서 살아왔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맞춰지지 않는 거리감 때문에도 그렇다.
그래도 코로나19의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핑계로 시댁에 가지 않을 만큼 시댁을 멀리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웬만한 일에 전화기를 들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신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맞는 일인가 싶었다.
좀 더 고민해 볼게요.
나조차도 의외의 대답을 했다. 광화문 불법 집회가 쏘아올린 고통 때문에 몇 주 동안 애 어린이집 때문에 생고생을 한 뒤여서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만 하면 안 가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나는 선뜻 어머니 말에 따르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명절 연휴 열흘쯤 전이어서 아직 시간이 남았다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시댁도, 친정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해서였을까. 나는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니까 추석을 핑계로 나들이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설날에 보고 겨우 추석 때 한 번 볼 시부모님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돌봐주는 핑계로 한 번씩 왕래를 하긴 했지만 친정 부모님도 명절 때 자식들이 보고 싶지 않겠나 싶었다.
며칠이 지나 확진자가 좀 줄면 간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남편이 가지 말자고 하긴 했지만, 누구 하나의 마음대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서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번 추석은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론은 내려졌다. 나로서는 나쁠 것 없는 결정이었지만 뭔지 모르게 답답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자유롭지 못한 결론을 내린 것 마냥, 코로나19라는 덫에 갇히고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핑계로 시댁도 가지 않으니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너희들끼리 놀러 갔다 와라
남편과 통화에서 결론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못 갈 것 같다. 아쉬워서 어쩌냐는 말을 하던 끝에 또 한 번 의외의 말을 들었다. 용돈도 보내주신단다. 다른 명절 때는 못 그러는데, 이번이 기회인 데다가 남들 다 놀러다니는데, 너네도 놀러 가든 좀 더 가까운 친정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신다. 친정엄마에게 시어머니가 한 이야기를 들려 줬더니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반응이다. 일 하는 며느리 힘들 거 같으니 그렇지, 자식들 생각하는 엄마 마음은 다 똑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정작 나는 많이 놀랐다. 내심 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 편 시댁이든 친정이든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외로움을 강요(?)는 시대다. 아무리 영상통화를 한다 해도, 6살짜리의 집중력을 언제까지 요구할 수 없고, 보고 싶은 마음을 없앨 수도 없다. 나도 자식을 낳아 키우니 마찬가지이듯 우리 부모님들도 손녀뿐만 아니라 자식인 우리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그런데 올해는 명절이라는 핑계마저 빼앗겼으니 심통을 부릴 만도 하지 않은가.
우리 부모님들은 심통을 부리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자극적인 뉴스가 쏟아지니 세태가 그럴 것만 같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부모님들과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세 식구는 이번 추석 연휴에 서울에 남는다. 이제 ‘일 하는 안쓰러운’ 며느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5일간의 연휴를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해 봐야겠다. 연휴 전에 마트에서 장을 두둑이 봐 둬야겠다. 식사 시간을 피해서 한 시간 거리 정도의 근교에 바람 쐬러 갈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엔 주말에나 짬을 내 갈 수 있는 10분 거리의 공원에도 자주 가야지.
그리고 바라건대, 이렇게 가족이 만나지 못하고 외로운 부모님들이 많이 생기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감염병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