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을 끄고 나를 발견하는 법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내게로 와 줘.
-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중-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로 하고부터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실천해 나가니, 조금 힘이 들지만, 마음 한쪽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언제 다시 이 마음이 무너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기에 이전만큼 오래 자리를 깔고 앉아 있지도 않을 것 같고, 좀 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
최근 들어 또 다른 변화는 집에서 TV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부모님 댁의 TV가 고장이 나서 새로운 TV를 사려는 즈음, 왠지 우리 아이들이 폭력 성향이 높아지고 TV에 빠져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를 TV 시청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이 기회에 TV를 부모님에게 드리고, TV 없이 생활해 보기로 하였다.
잠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는 늘 TV가 켜져 있었다. 나는 개그 프로, 드라마, 만화영화, 뉴스 등 각종 영상을 보고 성장해 왔다. 늘 소리와 영상에 혼이 나간 채 살아온 듯싶다. TV에서 각종 정보를 얻고, 오락거리를 찾았고, 친구와 부모보다도 더 많이 시간을 보냈다. TV는 나의 가장 친한 영혼의 단짝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TV 프로그램에 빠지며 현재 겪고 있는 고민을 회피하기도 하고, 외로워서 누구와 이야기할 대상이 없으면 TV를 켜 놓으면 안심이 되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말하기 싫으면 괜스레 보지도 않는 TV 프로그램을 열중하면서 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힘들 때면 재미있는 디즈니 만화나 뽀로로, 타요 TV를 틀어주며 휴식을 취하곤 하였다.
이젠 멈추었다. 관계를 정돈하였다. 일방적인 이별이었다. 이별 후 지금까지의 관계를 생각해 보니 지금으로서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소리와 영상이 멈추니 평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것과 같이 일상 하나하나가 선명해졌고,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일상에 초대되었고. 의자에 앉아 고민해야 했던 일들이 그냥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의 사소한 문제들, 아이들의 발달상태, 가족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내가 알면서도 피했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너무나도 잘 보였다.
나는 외부의 소리를 멈추고, 나의 내면에 초점을 두기로 하였다. 침묵 가운데 침묵이었다. 바로 처리해야 할 일도 좀 더 내면이 평화로워질 때까지 기다려 보고 서서히 처리해 나갔다. 그것이 짧게는 몇 분이 걸리기도 하였고, 몇 시간이 지나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좀 추구하고자 하는 내 안의 욕구를 분명히 자각했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처음 내가 계획한 대로 행동하지 않고 움직이는 내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방향에서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TV를 끄고, 일상을 살아가니 내가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이 더 크게 느껴졌고, 그 안에서 나의 행동들이 더 크게 지각되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길을 거니는 것처럼 내 마음은 열려 있고 평온해 보였다. 야간 근무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나 혼자 TV를 잠시 보다가 잠을 자는 패턴에서, 집 앞의 조그마한 산의 산책로를 걸어보기도 하였고, 꼭꼭 닫아놓았던 창문을 열고 신선한 바람을 마주하거나, 해가 지는 방향을 살펴보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감을 관찰하기도 하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추억에 빠지거나 넋 놓는 일도 생겨났다.
TV가 없어진 후 또 다른 변화는 아이들이 아빠를 더 찾고 물어보러 오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만의 휴식 시간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있고, 나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려 하는지 잘 보였다. 나는 그에 맞추어 대답하거나 응대해 주면 될 뿐 이전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이전과 다르게 새롭게 나의 일상이 보이니 내 안에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주어졌던 3가지 화두가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이다. 이 질문이 책상에 앉아서 할 때 내가 찾으려 했던 고민 질문들이다. 이제는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불쑥불쑥 일상생활 속에서 더 떠오른다. 마치 화두를 든 참선하는 사람처럼. 무척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나는 상황에 맞추어 내가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내가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 안이 평온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삶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부터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에게는 TV였다. 그다음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내 일상을 좀 더 관찰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