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육아 성찰 01화

과거의 아빠와 살고 있다.

잠재의식

by 송다감

잠재의식이라. 일상과 거리감이 있다. 미지의 세계, 초능력, 영적인 세상, 인류사적 유전 등등.

의식은 잠재의식의 비하면 빙산에 일각이라서 잠재의식이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나를 조정하고 있는 잠재의식, 도대체 너는 누구니?




나는 부모님과 형제들 간에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다. 만나면 편하고 힘이 나는 관계가 아니라 평가받고 위축 드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이런 느낌은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내 어려움과 불만을 말하면 늘 '자격지심이다, 게을러서 그렇다, 예민하다 등'으로 취부 되었고 언젠가부턴 가는 나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이따위라니 참 우울한 일이다.


나는 이미 마흔 살이 넘었고 부모님도 70세 전 후이시니 우리는 모두 어른이고 독립적이고 서로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글쎄, 나는 그리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육아를 하며 경력이 단절되니 자아실현, 정체성 이런 것들에 혼란을 느낀다. 육체적으로 단순하고 감정노동과 고립감을 겪다 보니 정서적으로 고갈되고 자존감이 더 많이 낮아졌다.


이러면 안 되지 다시 일어서고 싶은데 자꾸 마음속에서 나를 별 볼 일 없다 비난하고 혀를 차고 한심하다 화도 내고 나를 쭈그려 트리는 마음이 일어나 기력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느낌은 내게 익숙한 느낌이긴 하다. 직장생활을 하고 연극을 할 때도'이게 아니다. 한심하다. 답답하다.'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가끔 우울병에 걸리면 유난히 강렬해졌서 며칠을 거지 행색을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서른에 들어서며 명상을 배웠다. 알아차림의 시간을 갖다 보니 어느 날 계획표를 짜다 문뜩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는 화난 사람이 내 의식 뒤에 따로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정체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한 인물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빠'였다. 눈에 들지 않아 하고 관심 없는 엄마의 태도. '네가, 너만 이상해서 그렇다'는 뻔한 답변들. 언니의 냉소적인 언행과 눈빛들이 마구 섞여 있었지만 주로 아빠의 취하거나 무례했던 눈 빛과 말투를 하고 있다.


충격적이었다. 우리 가정은 큰 불화 없이 무난했다. 더욱이 아빠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서른이 다 되도록 키워내고 70이 넘어서도 나를 걱정하시는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가족들이 지난 성장 과정 속에 보여주었던 습관적인 태도들이 내 잠재의식에 여전히 살아남아서 나를 계속 나무라고 뜻에 따르지 않아 한심하고 답답한 존재로 흘겨보고 있었다. 보호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예민한 나의 어린 마음은 하나의 인격이 되어 있었다. 과거 아빠의 모습을 하고서.




원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고 통화도 자주 안 하고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지금. 내가 지난날의 가족, 그것도 좋은 기억 다 빼고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모님의 모습만 살아 남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무섭고 안타깝고 속 상했다.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갑자기 가족들이 내게 단 한 번만 '그랬니.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간절히 도, 간절히 도 듣고 싶었다.


이대로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내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하니까. 무엇보다 이제 나는 부모가 되었다. 원가족의 경험이, 기억이 이렇게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부모가 된 나로서 가만있을 수는 없다. 나의 무의식적 언행으로 인해 내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화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빠를 내 마음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의식도 못하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살면서 나를 혼만 내고 내가 살아가는데 하나도 도움 안 되는 과거의 아빠는 가짜다. 실체가 아닌 내 마음속 언짢음이고 그리움이다.


비난으로 가득한 가짜 가족, 가짜 아빠, 불편한 잠재의식을 지우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방법을 찾아냈다. 잠재의식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써서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들려주는 것이다.


우선은 지난날의 아빠와 가족에 대한 인식은 '내가 만든 상처일 뿐 허상이고 지금의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실체'라는 것을 분리시켰다. 부모는 나의 뿌리이다. 원 가족에 대한 원망이 생기려고 하자 불행한 기분이 느껴져 빠르게 그 실체를 내 과거의 상처로 남기고 열심히 살아가는 지금의 원 가족들을 무사히 분리시켜 사랑과 감사의 대상으로 남기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부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복하며 내 뿌리, 내 본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육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잠재의식 속에 있던 가짜 아빠를 알아차리고 내 뿌리를 보살피니 아이들에게 '잘해줘야 하는데' 하는 막연함이 아닌 '응원이 되고 위로가 되는 부모가 되야겠다'라고 하는 확고한 방향을 잡게 되었다. 내가 무슨 이유로, 어떤 기대를 갖고 내 아이와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정확해지니 또 다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의 내 아빠는 본인의 부정적 메시지가 이렇게 지대한 영향력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남아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함께 살아가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괴롭히고 있을지 꿈에도 모르실 것이다. 그리고 아신다면 큰 충격을 받으실 것도 같았다. 나도 처음 알아차렸을 때 충격을 받았으니 말이다. 이 알아차림은 아빠가 알 일이 아니다. 내가 알고 내 아이의 잠재의식에 내가 선택한 인물을 선사하는 것으로 충분한 일이다.


상처 받은 아이도 자라면 부모가 된다. 그 자식에게 자신의 상처를 부모라는 권력으로 무차별하게 전가한다. 대를 이어 전달돼 이런 악순환이 무섭고 너무나 속상하다. 잠재의식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부정적 잠재의식을 자손에게 대물림하는 굴레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모라는 자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지대하고 위대한지, 본인의 언행이 아이 삶 전반의 잠재의식을 꽉 채울 수 있는 어쩌면 영적인 존재와 같다는 것을 반드시 알았야 한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영영 모르고 살 수도 있었는데 알아차리게 되어 감사하다. 내 행동을 돌이켜 육아 태도를 점검하면서 나를 살리고 더불어 내 아이까지 살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안정을 되찾기까지 명상을 통해 얻어낸 기도문을 아침마다 보고 적으며 나를 성장시켰다.


나는 위대한 존재이다. 내 아이, 한 인간의 잠재의식에 뿌리 깊게 남을 위대한 존재이다.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누군가의 염려와 보살핌을 받으며 무사히 성장한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어른이다. 부모로부터 내려온 내 언행의 부정적 씨앗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어른이다.


이 경험을 통해 잠재의식이라는 거대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을 부모가 어떻게 수용해 주고 세상을 안내해 주느냐의 따라 만들어지는 에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의 언행이 아이에게 얼마나 지대한지 알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의 잠재의식에 매우 깊이 관여된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 자식을 나은 뒤까지 혹은 그 손주가 늙어 죽을 때까지 내 불안과 언행이 그들의 잠재의식에 남아 그들을 더 행복하거나 더 고달프게 할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찌 보면 무거운 짐이지만 어찌 보면 나라는 존재가 흩날리는 낙엽이 아니라 단단한 뿌리가 뻣어나가고 건강한 줄기가 뻣어오르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져 안정감을 준다.


두 가지 알아차림과 세 가지 확언 이후 내 귓가에 대고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못났다 부족하다 그게 아니다라며 실랑이 벌이는 가족의 목소리와 모습이 많이 옅어졌다. 아직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마음속 가족의 비난에 휘감기긴 하지만 이제는 가족의 말을 따르지 못하는 나를 한심해하고 질책하지 않는다. 나는 충분히 어른이 되었다. 타인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고 나의 뜻을 펼쳐도 되고 넘어져도 되고 잘 못해도 괜찮다.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는 어른이 돼있다. 내 인생을 찾아온 느낌이다.


허상임이 밝혀진, 나와 자나 깨나 함께하는 과거의 아빠와 이제 그만 산다.

'아빠 잘 가. 안녕. 사실 너는 아빠가 아니었어. 아빠의 상처이고 찌꺼기야. 그저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생존 방식이었고 나의 상처일 뿐이야.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나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 이제 그만 헤어지자. 잘 가.'


과거의 아빠와 작별을 하고 잘 살아가고 있지만 포스트잇 떼어내듯 딱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나를 붙잡아줄 입버릇을 달고 다닌다. 불경이나 찬송가를 부르듯. 지금의 온전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음에만 집중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축복에 감사합니다'를 멈추지 않고 암송한다.


이제 아이들을 마음껏 자애롭게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어른이라는 생각은 진심 어린 감동을 자아낸다. 찌꺼기 없이 순수한 자애로움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 나에게 잘 살아갈 힘을 준다.




여전히 잠재의식의 전체는 모른다. 의식으로 살아가는 나로서 잠재의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의식으로써 부정 감정의 알아차림과 긍정 확언 수준에서 그 잠재의식의 문고리 하나쯤은 두드리고 의식의 신호를 잠재의식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는 확신은 갖게 되었다.


누군가 과거의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면, 비아냥거림 가득한 속삭임에 시달리며 고달프게 살고 있다면 이 글이 그 속삭임을 물리치는 방법을 알려주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우린 해낼 것이다. 우리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우리도 그렇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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