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핑이란 일상 속 숨어있는 문학

(feat. 영화 ‘폭풍속으로’)

by 서퍼시인

오늘 아침에 아주 큰 파도를 탔어요.

- 영화 '폭풍속으로'의 주인공 ‘조니 유타(키아누 리브스)’의 대사 -




12월의 서핑 이야기를 하기 전 영화 ‘폭풍속으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를 서핑의 세계로 인도한 영화다. 1991년 개봉한 영화인데, 주연은 너무나도 유명한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두 명이다. 7080세대는 이 두 명의 영화배우를 대부분 알거라 생각한다. 키아누 리브스는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잠입한 언더커버 경찰(FBI이지만 편의상 경찰이라고 하겠습니다)이고, 패트릭 스웨이지는 범죄조직(은행털이)의 수장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자유롭게 서핑을 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서 일은 하기 싫고 자유롭게 서핑은 하고 싶고, 그래서 은행을 터는 그냥 그런 젊은이가 모인 범죄조직이다. 이 조직을 괴멸하기 위해 경찰(키아누 리브스)이 잠입했지만, 조직의 수장인 패트릭 스웨이지가 말하는 자유에 대한 철학과 서핑에 빠지게 되면서 경찰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되며 전개되는 액션영화이다. 서핑을 좋아하지 않아도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액션영화이니 추천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꽃미남 두 명을 감상할 수 있는 보너스도 주어진다.


이 영화에는 명대사가 많다.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이 아니야” [극 중 보디(패트릭 스웨이지)의 대사]


“그는 돌아오지 않아” [극 중 유타(키아누 리브스)의 대사]


바로 위에 적혀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사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죽을 걸 알면서도 엄청나게 큰 파도를 타러 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뒤돌아 걸어가면서 한 말이다.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이 아닌걸’ 알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에게 명대사는 이거다.

언더커버로 잠입한 지 2주가 지났음에도 성과를 들고 오지 못하자 상사는 키아누 리브스에게 호통을 쳤다. 그 순간 키아누 리브스는 말한다.


“오늘 아침에 아주 큰 파도를 탔어요”


어떻게 해석하냐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무시해도, 직장 상사가 나를 죽도록 괴롭혀도,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걸 견딜 수 있다. 천둥 같은 야단에도 내가 큰 파도를 탔다는 자부심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 따위는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일하러 왔으면 일을 열심히 해야 안 되겠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다. 돈을 벌려면 돈값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고, 그 영화에서 얻고자 하는 철학만 가져오자. 나는 저 대사에서 꺾을 수 없는 자존감의 크기를 보았다. 그 자존감의 크기는 연인이든, 동물이든, 그 무엇이든 진실한 사랑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본다.


11월 중순에 서핑을 홀로 했다. 그 외로움과 설렘과 두려움을 출근과 함께 묻어 두고 책상 앞에서 일을 하다 보니 12월이 되었다. 나는 11월의 서핑을 마치고 난 뒤 파도의 높이를 볼 수 있는 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오늘 파도의 높이는 어떤지 습관적으로 보았다. 파도의 높이가 1m 이상이라면 초보자가 서핑하기에 힘든 높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높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12월의 주말에 1미터가 넘는 파도가 들어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날 ‘드디어 높은 파도에서 서핑을 해보겠구나!’ 하며 홀로 바다로 갔다.


12월의 날씨는 진짜 추웠다. 모두 파카를 입고 손에 장갑을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추위도, 칼바람도 서핑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 바다의 수온이 아무리 낮아도 파도가 높다면 서퍼들은 달려간다.

나도 당연히 달려간다. 홀로서기 한, 갓 태어난 서퍼니까. 나도 이제 서퍼니까.

중2병에 걸린 것 같은 저 위에 오글거리는 문장은 당연히 내가 쓴 거다. 사랑이 오글거려도 아름답듯이 서핑과 사랑에 빠진 나는, 오글거려도 서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 다음 편에 1미터 넘는 파도에 호되게 당한 서핑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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