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강은교 ‘파도’)
파도
강은교
모래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나는 보았습니다.
파도들이 달려올 때는 옆파도와 단단히 어깨동무한다는 것을
손에 쥔 하얀 거품이
모래밭을 덮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온몸을 하얀 거품 속에 감춘다는 것을
파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2022년 12월 어느날이었다. 겨울바람이 불고 하늘은 푸른빛에서 잿빛으로 바뀌었다. 계절이란 신기하다. 가을이라는 이유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민낯을 드러내다가,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니 마스크를 쓰는 우리 얼굴처럼 어두침침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런 하늘을 보며 나는 바다에 도착했다. 바다의 얼굴은 어땠을까?
나는 파도의 높이를 나타내주는 앱을 알게 되었다. 파도의 높이뿐만 아니라, 풍속, 파도가 몇 초마다 밀려오는지 등등을 나타내주었다. 그날은 파도의 높이가 1미터가 넘었다. 풍속도 매우 강했으며 비도 가끔 내리는 날이었다. 이 전까지는 파도의 높이가 겨우 0.5m 정도거나 더 낮을 때 서핑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수영을 잘 하지 못해도 서핑보드 위에 있으면 안전했고, 발이 바닥에 닿는 위치에서만 즐겼다. 거친 바다의 민낯을 알지 못했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오히려 흥분했었다. 드디어 큰 파도에서 서핑을 해보겠구나 생각하면서.
바다 위에는 과장을 좀 보태서 100명은 넘어 있는 거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전까지는 늘 10명 내외로만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은 날은 이렇게 사람이 많구나 놀라면서, 나는 서핑보드와 서핑슈트를 대여하고 백사장으로 나왔다. 호기롭게 파도의 거품에 첫발을 내디뎠다.
‘어, 많이 차갑네’, ‘어, 앞으로 걸어가기가 좀 힘드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때쯤 내 귓가에 폭탄 소리가 났다.
“쾅”
나는 보드와 함께 바닷속으로 꼬꾸라졌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순간 사라졌다. 나는 정신없이 일어났다. 그러자마자 또 “찰싹” 소리가 났다. 파도가 내 뺨을 때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물 따귀’(경상도 말로 하면 ‘물싸다구’)였다. 얼굴이 아팠다. 그러고 있는데 내 옆에서 누가 보드와 함께 자빠졌다. 내가 타는 스펀지보드가 아니었고, 에폭시로 만든 아주 단단한 보드(‘하드보드’라고도 부릅니다)였다. 그때는 하드보드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방금 저 보드에 내가 맞았다면 최소 뼈가 부러졌을 거라고 직감했다. 내 옆에서 넘어진 사람도 놀랐는지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떠났다. 나는 어쨌든 원래 하던 데로 사람들이 주로 대기하고 있는 라인업*까지 가려고 계속 걸었다. 최대한 걸어갔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보드 위에 올라타서 패들링을 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또 내가 사라졌다. 큰 파도가 내 보드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고 나는 다시 꼬꾸라졌다. 다시 일어나고 눈을 떠보니 백사장 근처에 있었다. 내가 걸어간 만큼 다시 떠밀려 나온 것이다. 들어가면 떠밀려 나오는 행위를 계속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정신이 없어서 계속 앞만 보고 있었는데, 힘이 다 빠지니 주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파도를 뚫고 들어가는 거지?’
근데 그냥 잘 뚫고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이라는 단어밖에 쓸 수 없었다. 나는 더 할 힘이 없어서 그냥 나왔다. 샤워하고 시간을 보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럼 나는 최소 1시간 30분 동안, 바다로 들어가다가 파도에 떠밀려 나왔다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바다를 보다가 집으로 떠났다.
그날의 바다는 나를 거부했다. 준비된 자가 아니면 받아 주지 않았다. 바다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기사 어딘들, 누구든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친다. 파도는 끈끈했다.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휩쓸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바다의 작은 점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작은 점이라는 표현도 과분하다. 바다와 파도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 작은 점조차도 허락해 주지 않으니까. 다가가고 싶다면 알아야 하고, 알고 싶으면 노력해야 한다. 부랴부랴 파도를 뚫고 들어가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터틀롤’이라는 것과 ‘푸쉬 스로우’라는 방법들이 있었다.
타인이 지인이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짜증 섞인 얼굴도 보이게 되고, 고함치는 모습도 보이게 된다. 이런 것들은 가까워지는 증거이기도 하며 통과의례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바다와 파도에 한 자리라도 껴서 고개라고 들고 싶으면 계속 관찰하고 절실한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 온몸이 아팠던 통과의례였다.
*라인업: 서핑을 하기 위해 서퍼가 파도를 기다리는 위치(파도가 깨지지 않는 안전한 구간을 말하기도 합니다. 바다에서 많은 서퍼들이 둥둥 떠서 파도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라인을 라인업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