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내가 탈 수 없는 큰 파도의 힘을 겪고 나서 서핑이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파도를 뚫는 방법, 라인업에서 대기하는 방법, 서핑보드의 구조, 서핑의 룰 등등.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나는 2022~2023년 겨울에 혼자서 한 달에 서핑을 꼬박꼬박 세 번씩 갔다. 가장 추운 1, 2월에 말이다. 그 과정에서 혼자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
비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반차를 내고 서핑을 하러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파도는 거칠었고, 비는 내 얼굴을 따갑게 했으며 바람은 내 귀를 떨어뜨릴 것 같았다. 나는 전투적으로 서핑슈트를 입고 무거운 스펀지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와, 인간적으로 너무 추웠다. 추운데 내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 때문에 정신도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파도를 뚫고 라인업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확하게 나 말고 3명이 더 있었다. 다들 잘 타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을 보며 외로움을 떨치고 열심히 패들링, 또 패들링을 하며 간혹 운 좋게 파도 잡으면 직진라이딩을 했다. 음.. 한 시간에 하나 성공. 그렇지만 더 이상 춥지 않았다.
거칠지만 큰 파도가 나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보드에 누워서 열심히 패들링을 했다. 그런데 멀리서 나를 보고 있던 다른 서퍼가 소리쳤다.
“더 빨리, 더 빨리해야 해. 패들, 패들, 패들”
나는 열심히 했지만 파도를 놓쳤다. 부끄러웠다. 고개를 들고 그 분께 감사인사를 했다. 고맙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부끄러웠다. 이 부끄럼쟁이..
나는 2시간가량 혼자서 서핑을 하고 바다를 나왔다. 보드를 들고 반납해야 할 서핑샵으로 걸어가려는데 손발에 감각이 없었다. 바라보니 손발이 엄청나게 빨겠다. 감각이 완전 없는 건 아니었지만 흡사 마취 주사를 맞은 기분이었다. 발가락은 내 의지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불과 50m거리가 500m보다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보드를 들고 가기에 어려웠다. 등 뒤로 돌아서 보드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야 했다. 겨울에 차가워진 백사장 모래는 얼음장 같았다. 내 발은 점점 더 겨울의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힘겹게 보드를 반납하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고 손발을 적셨는데 엄청 따가웠다. 따뜻한 물이 따뜻하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샤워실에서 장장 1시간을 있었다. 그러고 나오니 손발이 정상으로 느껴졌다. 나는 원래 수족냉증이 심했는데 조심해야 함을 느꼈다. 그날 겨울 서핑 장비에 대해 또 배웠다. 서핑슈트 외 서핑 장갑, 부츠, 후드 세 종류가 있었다. 물론 슈트 또한 5mm, 6mm, 드라이 슈트, 세미드라이 슈트 등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주로 겨울 서핑 장비를 착용하고 서핑을 하고 있었다. 부산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장갑, 부츠 없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날 나랑 같이 바다에 있던 다른 3명도 장갑, 부츠가 없었다. 강원도만큼 춥지 않으니까. 나는 부산에서 이렇게 추웠으니, 강원도 사람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동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날의 간접 체험으로 깨달았다.
왜 이렇게 무지하게 움직이는 걸까? 집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채웠지만 나는 건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래. 무탈하게 돌아왔다면 됐다. 인사도 다음에 더 잘하자. 그날도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게 승리하였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또 서핑하러 가야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