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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12. 2022

봄꽃은 일제히 피지 않는다

산골 일기 여섯 번째

수레국화의 보랏빛 청량함이 너무 좋아 뜨락에 군락을 이루도록 가득 심었다. 

3월 꽃대가 오르더니 4월 초 일찍 개화한 녀석들은 벌써 보랏빛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청초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뒤이어 두어 송이 꽃이 이어지더니 5월에 이르러 거의 모든 꽃이 만개하였다. 

하지만 6월에 이르러서도 더운 열기를 뚫고 뒤늦게 오른 꽃들이 한동안 서늘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수레국화가 껑충한 꽃대를 수그리며 져가는 것은 7월에 이르러서였다. 


봄꽃은 비단 수레국화뿐 아니라 거의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개화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꽃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춥고 혹독한 겨울을 견딘 씨앗들은 대기가 따뜻해지는 시기가 오면 발아를 시작한다. 

꽃씨는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야 비로소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따스한 곳에 둔 씨앗이 쉽게 발아하지 않거나 무분별하게 발아한다. 

겨울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의 시련이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따스한 봄날이 되면 씨앗은 비로소 오랜 휴면기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따스함이 한파 속에 찾아온 일시적인 이상기온이었다면! 

아마도 그 꽃은 다시 추워진 대기 속에서 절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꽃들은 혹시 모를 이상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발아하지 않고 점차적이고 순차적으로 발아한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인가! 

이때 땅 속에 남아 계속 휴면 중인 씨앗을 종자은행(seed bank)이라 부른다. 

변화무쌍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가 멋지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집 뜨락의 수례 국화가 석 달에 걸쳐 계속 자라며 꽃을 피워낸 이유를! 

진짜 봄이 왔는지, 가짜 봄인지 척후병을 계속 내보냈을 꽃들의 기다림을 생각하니 

수례 국화 한 송이 한 송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자라는 자유로운 들꽃들과 달리 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재배품종들에게 

이런 지혜는 치명적이다. 

일제히 꽃을 피우고 일제히 수확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식물의 간격은 

생산성 저하에 치명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품종개량이라는 명목 아래 어떻게든 일제히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균일성과 획일성으로 식물의 자유를 박탈하는데 혈안이 되어 왔다. 

재배종들이 더 불쌍한 것은 다양한 성격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타가수정’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꽃 안에서 암술과 수술이 서로 만나는 ‘자가수정’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매혹적인 이성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 

재배종은 인간에 의한 강제로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 아래 

동일 형식의 단일화라는 벼랑으로 끝없이 내몰린다.       


하지만 이런 획일화와 단일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어찌 식물에만 국한되었겠는가? 

우리가 아는 바처럼 근대식 집체교육은 1819년 프로 시아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초, 중, 고의 학교교육 시스템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그 근대적 집체교육의 출발점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복종하는 군인, 

둘째 유순한 광산 노동자, 

셋째 순응하는 공무원, 

넷째 요구에 부흥하는 사무원, 

다섯째 중요한 문제를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을 양산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통치기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획일성이야말로 

국가 생산성의 핵심 요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 시아의 생각은 맞아떨어져서 집체교육의 결과 프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았다. 

획일화와 집단화에 따른 역사의식의 실종, 집단적 잔인성, 탈 개성화로 인해 사회의 사막화가 가속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토대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이며 신학자였던 본 회퍼는 

획일화로 인한 이성적 마비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불러왔다고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굳이 획일화가 아니더라도 식물은 자연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일제히 꽃을 피워내서 온 천지를 꽃 너울로 만들어 낸다. 

봄에 흐드러진 벚꽃이 그렇고 산수유며 개나리며 진달래가 그렇다. 

이제 진짜 봄이 왔구나 싶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껏 꽃을 피워내서 천지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인위적인 획일화나 단일화가 아닌 스스로 결정한 만발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강제로 줄 세우지 않아도 사회적 덕목과 가치관이 제대로 서면 무질서함이 어색해지는 것이다. 

불규칙함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것이다. 

독재자들은 세상을 강제하려고 애쓰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자발성을 가지고 

스스로 원칙을 만들어 나갈 위대한 능력을 가졌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식물의 세계와 상반된 우리 인간들이 온갖 지식과 능력을 다 동원하여 추구하는 

효율성 사이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혼동이 일어난다. 

아니 살면 살수록 풍요의 약속을 가장한 획일화에 대한 반감이 커져간다. 

젊은 날에는 몰랐는데 나이 들수록 조금 모자라고 부족해도 좋은 

여유와 자유와 간격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넘치는 것보다 은근한 것이 좋다. 

한 끼 배부르게 뚝딱 해치우는 것보다 오래 음미할 수 있는 맛과 풍경이 좋다.

          

시골 살이를 하면서 반듯하고 좌우 균형이 맞는 정교함이 점점 싫어진다. 

있는 그대로 조금은 거칠고 흐트러진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획일적이지 않는 자연의 여유가 풍성하게 다가온다.     


‘그래 조금 삐져나왔다고 네 잎사귀를 자르지 않으마.’

‘내 보기 좋으라고 사각의 틀 속에 너희를 가두지 않으마.’


조금은 삐틀삐틀한 화단의 경계석이며, 울타리 밖으로 나들이 나온 가지와 꽃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그들의 자유를 간섭하고 강제하고 싶지 않다. 

꽃들이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데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낯선 곳으로 뻗어 나가는데도 다 그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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