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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Oct 05. 2022

내 마음을 훔친 도둑 꽃밭

산골 일기 사십칠 번째

  시골 살이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가슴에 자연의 고운 심성을 심어줄까 하는 고민과 사명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교육기부 활동이 ‘학교 꽃밭 가꾸기’였다. 꽃밭 교육을 시작하면서 꽃밭의 이름만은 아이들이 직접 지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들에게 꽃밭 이름을 공모했다.      


“우리가 만든 예쁜 꽃밭 이름으로 무엇이 좋을까?”     


나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든다. 손을 든 아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말했지만 

모두가 와~ 할 만한 이름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중에 괜찮은 이름이 ‘새싹 꽃밭’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으로 꽃밭 이름을 정하려는 순간 교실 한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던 한 아이가 부끄러운 듯 손을 들고 작은 이름을 속삭였다. 가만 귀 기울여 들어보니 그 말은 “도둑 꽃밭이요.”라는 말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이름이라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에이 그게 무슨 꽃밭 이름이냐?”

“무슨 꽃밭 이름에 도둑이 들어가냐? 누가 꽃을 훔쳐가기라도 하냐?”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던 와중에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내 마음을 훔쳐가니까요.”     


그 아이의 부연설명에 아이들은 손발이 오글거린다며 한참을 키득거렸다. 그렇게 해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꽃밭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훔친 도둑 꽃밭’ 


아이들의 기발 함이라니! 그 누가 이보다 더 좋은 꽃밭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정한 

‘내 마음을 훔친 도둑 꽃밭’이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꽃밭 수업이 아이들의 마음을 훔치기를 마음 깊이 소망했다.      


아이들과 이름을 정한 꽃밭 터는 크고 작은 돌멩이가 넘치는 돌밭이었다. 꽃을 심기 위해서 먼저 땅을 고르는 일부터 해야 했다. 예쁜 꽃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돌부터 솎아내야 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돌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밭 주변으로 돌 울타리가 쳐질 만큼 수북하게 돌이 쌓였다. 나는 그 많은 돌멩이를 골라내면서 돌 하나가 골라내질 때마다 마음속 응어리들과 단단하게 맺힌 완고한 생각들이 하나둘 뽑혀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돌을 골라내듯 내 마음에 있는 근심과 걱정, 염려들이 뽑혀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밭을 일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지, 정서를 아름답게 다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꽃밭이 모두 완성되면 박토 같았던 내 마음도 옥토가 되어 있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마음 또한 더욱 그러할 테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들에게 드리는 작은 헌시를 적었다.       

- 내 마음을 훔친 도둑 꽃밭 -     


크고 작은 돌멩이를 솎아내면

마음속 돌멩이들도 함께 솎아져요.     


단단히 뿔이 났던 일들도

두고 보자던 꽁한 생각도 저만치 달아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흙처럼

내 마음도 부드럽게 가라앉아요.     


얼마나 자랄지 모를 꽃씨 하나를 심으면

마음 밭에도 얼마나 예쁠지 모를 꽃씨가 심겨져요.   

  

아직은 메마른 껍질이 단단하여도

어딘지 모르게 캄캄하여도

때가 되면 푸른 하늘로 얼굴을 들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내 마음은 알아요.     


꽃밭 도둑이 내 마음을 훔쳐 가면

내 마음도 도둑 꽃밭으로 변해요.     


하늘가에 하늘하늘 

고운 빛 꽃잎 파리가 피어나면

내 마음 꽃밭에도

하늘 닮은 꽃 잎새가 하늘하늘 돋아나요.     


젊었을 때는 마음을 훔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번민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마음을 훔치는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속상했다. 늘 새로운 호기심에 마음이 훔침 당하는 그런 천둥벌거숭이 소년으로 살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세월이 이끄는 대로만 살았다. 


게으른 용기를 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꽃밭을 일구면서 나는 다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아~ 세상 소풍을 마치는 그날까지 이런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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