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급: 모든 수용자에게 S1(모범)~S4(중경비) 등급이 주어진다. 죄질등에 따라 급을 매기고 숫자가 높을수록 상태가 좋지 않다고 보면 된다. S3는 일반경비 처우급(一般警備處遇級)을 의미하며 입소했을 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급수다. S1, S2만이 출역수 반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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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와서 계장님께 의논을 드렸더니 계장님은 완강하게 말씀하셨다.
“ 뭐라카노, 안된다 그래라 ~ 뺀질해가지고 가뜩이나 신경 쓰이는데 어? 질서 좀 잘 잡는다고 반장하나? 취사장 개판 5분 전 될끼라. 그라고 S3는... (반장)안 올린다.”
반장이 출소해 나가려면 2달 남짓 남아있었기 때문에 팔자걸음에게 '어려울 거 같다'라는 답변을 바로 하지는 않았다.
팔자걸음이 자연스레 눈치채기를 바란 것도 있었고, 허탈함 가득한 팔자걸음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은, 그에 대한 내 여린 마음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팔자걸음은 눈치를 못 채고 더더욱 취사장의 기강을 잡는 모습을 근무자들이 보는 눈앞에서 자주 보여주었고, 왠지 그의 팔자걸음은 괜히 더 심해져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많아져갔다. 수용자들은 ‘팀장이 진짜 반장이 되는 건 아니겠지?'라고 수군거리는 듯했다.
며칠 뒤, 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팔자걸음이 근무자실 근처를 서성서성 거리는 모습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랄까. 별 거 아닌 일로 근무자실에 도구를 빌리러 오기도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근무자 문을 노크한 뒤 '좋은 아침입니다~'라며 쓸데없이 90도 허리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어깨를 쫙 편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작업장으로 사라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여주었다.
내가 팔자걸음을 부를 때 그가 기다렸다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는 걸 보니 비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아쉽게 됐어요.”
“ 아... 정말입니까...”
“아무래도 반장은 힘들겠어요.”
“그렇군요. 그럼 저 이제 삶의 낙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팔자걸음씨. 반장이 안 된다고 하늘이 무너지진 않아요”
한 손으로 반지르르한 이마를 매만지며 웃으며 얘기하는 팔자걸음.
“아직 저 여기서 6년 남았습니다... 반장 맡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고, 아직 바로 잡을 게 많거든요.”
“ (달래듯이) 욕심을 내려놓아 볼까요. 요즘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아요.”
팔자걸음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조금 시간을 주다가 다시 내가 말했다.
“마음은 알겠지만 '순리가 진리'라고 생각해요. 뭐든 억지로 순리를 거스르다가 일이 꼬일 때가 많더라고요.”
“만약에요. 기록 형님이 반장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나마 마음 맞는 박 씨랑 합심해서 일하는 게 낫지... 다른 제3자가 반장이 되는 걸 보고 싶은가 봐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셨다고 꾸벅 인사를 두 번 하고는 이내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팔자걸음.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걸음이 팔자걸음에서조금 힘이 빠져 11자 걸음 같아 보였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시간 날 때마다 팔자걸음의 안색을 지켜봤다. 표정이 어두운 날도 있었고 바쁜 날은 좀 나은 날도 있었다. 내가 안부를 물으면 팔자걸음은 이내 밝은 모습으로 응했다.
며칠 뒤, 사회복귀과 사무실로부터 감사일기 공모전 안내문을 취사장에 붙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게시판에 붙이라고 반장에게 안내문을 건네기 전, 한 부를 빼내 팔자걸음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 그에게 아직 반장자리에 대한 미련의 불씨가 남아있다면 그 마음을 감사와 비움으로 환기시켜주고 싶었다.
“이번 주부터 수용자 감사일기 공모전 신청받던데, 생각 있어요?”
예상외로 고마워했다. “오 좋은데요, 주임님”
“그냥... 팔자걸음씨가 떠오르더라고요”
며칠 뒤, 팔자걸음과 다시 작업상 마주치게 됐다. 쭈뼛쭈뼛 나에게 다가오는 팔자걸음.
“주임님, '순리가 진리'라는 말 좋았습니다. 뭐 제가 반장이 된다고 해봤자 또 어디서 일이 그르쳐지겠죠. 흘러가는 대로 그냥 지내렵니다. 그때 그냥 '안된다'고만하지 않고 저랑 대화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팔자걸음씨가 잘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네요.”
팔자걸음은 그렇게 반장 되기를 잊고 선배인 박반장과 합심해서 취사장을 잘 이끌고 가는 듯 보였다.
그로부터 1달 뒤, 나는 계장님과 함께 새로운 인사 발령으로 취사장을 떠났다.
어느 날 게시판에서 '수용자 100일 감사일기' 공모전 대상자에 '팔자걸음'의 이름이 당당히 적혀 있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잘하고 있네...”
내가 나가고 취사장 근무를 이어받은 주임님과 마주쳐 그 수용자 (팔자걸음) 잘 지내냐, 뺀질거리지는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아 그 작업반장요? 긍정적이고 트러블도 별로 없는데요.”
“ 작업반장요?”
“네네 반장 바로 밑에 그런 게 생겼어요.”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가 나왔다. ‘팔자걸음씨 좋아했겠네’
(2달 전) 계장님 : “그 뺀질이 마음에 안 들어. 겉멋만 있지 실속이 없어.” 나 : “그래도 지켜보죠. 저는 저 팔자걸음이 늠름해 보이는데.”
그는 지금 더 이상 겉멋만 든 팔자걸음씨가 아니었다.
아직 좀 부족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제 그 팔자걸음은 늠름한 자태의 능동적인 자신감에서 오는 걸음걸이였다.
감사 훈련, 그리고 순리에 대한 순응.
그것이 정말 팔자걸음씨를 변하게 했을까에 대한 대답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문득, 몇 년 뒤 팔자걸음이 출소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작업복 대신 평범한 사복을 입은 그가, 더 이상 거들먹거리지 않는 가볍고 단정한 걸음으로 교도소 문을 나서는 모습을.
그때 그의 손에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그 감사일기가 쥐어져 있기를. 아니 더 두꺼워졌기를.
그리고 교정이라는 공간에서 싹 틔운 순응의 열매가 바깥세상에서도 그와 영원히 동행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