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은 자발적 고립주의자

느슨한 연대를 좋아하시나요?

by 천천희




자발적 고립주의자



자발적 혼밥. 혼자일 수 있는 능력.

1인 사무실.

흩어져있는 직원들.

사색. 독서.

신문 넘어가는 소리.

선명한 마우스 딸깍 소리.

침묵. 정적.


어쩌다 사람들과 잠깐의 활기,

이내 각자가 혼자가 된다.





교도소 직원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맞나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원대는 출근해서 입을 열 일이 많이 없다.



1인 기업도 아니고

수천명의 사람들 속에 파묻혀 일하지만 소통해서 업무를 진행하거나 실적을 내야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교도소다.




아침에 출근한 원대는

아침 일과 교육 때만 잠깐 직원들과 모인다.




교육이 끝나자마자

원대는 자기가 담당한 사동으로 모두 들어간다.



이곳 교도소는

계호 직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터라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곳.





최대한 흩어져 그들을 살펴야

사건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 흔한 직원들끼리 커피타임도 잘 없다.







조용한 직원들의 천국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

MBTI 테스트의 'E'(외향성) 같은 사람들은 교정직과 잘 안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관계에 문제는 없지만 직원들과의 오랜 시간 협동을 에너지의 충전보다는 소진으로 받아들이는,



한 곳에서 우직하게 혼자 계호 겸 고독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천직이다.



내 아내 같은 사람이 교도관을 하면

이보다 고통스러운 직업이 없겠다 생각한 적이 있다.


아내는 한 곳에서 오래 있는 것보다 1시간 이내로 공간의 환기가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사람이다.


한 공간에서 8시간, 많게는 밤도 지새우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뿐하게 보낼 줄 아는,

'정적'으로 앉아있다가 갈 줄 아는 직원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 교도소다.


매점. 카페. 휴대폰. 수다 떨 사람.


없다.



본인의 근무 중 휴식 시간에는

1인 리클라이너 20여 개가

간격을 두고 비치된 휴게실로 들어가

제일 구석 리클라이너에서 이어폰을 끼고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충전하는 직원이 대다수.


(물론 대화하고 떠들며 시간 보내는 직원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휴게 시간은 꼭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데 사용한다.)



그런 면에서 정적이고 30대 들어 혈기가 좀 빠지고 안정을 중시하는 성향이 두드러진

나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책도 읽고 사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참 나와 잘 맞는 최고의 직업인 것 같다.






느슨한 연대.



오늘 원대는

이틀의 휴무를 거쳐 오래간만에 출근했다.


원대의 오늘 배치는 수용자 이송 계호 업무다.


대구에서 서울구치소까지 수용자 몇 십 명을 데리고 가는 날이라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왔다.


아침 8시에 부랴부랴 안면 인식을 찍고

일과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는 이송계획서 종이를 쳐다보는 원대.


같이 이송업무를 맡은 직원이 4명이라 쓰여있는 걸 확인한 뒤 게시판에서 종이를 빼서 3장을 복사해 온다.


원대는 곧이어 신입자 교육실로 걸어간다.


그곳에 계장님, 주임님, 그리고 부장님 한 분과 간단히 수용자의 특성과 오늘 유의사항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고 각자가 맡은 부분을 해내러 헤어진다.


부장 한 분은 수용자를 데리러,

주임님은 수용자 기록카드를 챙기러,

계장님은 전반적인 사항을 파악하러.

그리고 원대는 보호장비와 가방을 챙기러 헤어진다.


수용자를 차에 싣고 나서도 근무자는 호송 버스 안에서도 효율적인 계호를 위해 흩어져 앉는다.


원대는 차 밖 창문을 응시하며 몇 십 분을 가다가 수용자가 에어컨이 너무 세다고 해 잠시 멍을 거두고 일어나 수용자 위 개인 통풍구를 잠근다.


"이제 됐어요?"


4시간 동안 버스에서 울려 퍼진 문장은

수용자 스무 여명과 직원 네 명 중에 원대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뿐.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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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버스가 서울구치소에 도착했다.


비엔나소시지 같이 엮인 몇 십 명의 수용자를 다 내리고 4명의 근무자는 또 각자의 맡은 업무를 위해 헤어진다.


보통 회사에서

'서울까지 출장 온 4명의 직원'이라고 하면 서울에서 식사도 하고 업무에 관한 담화도 하면서 꽤 친해지거나 그들만의 추억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곳 교정직 세계에서는

그저 대구에서 서울까지 계호 하러 온 사람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점심식사는 서울구치소 직원식당에서 조용히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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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소할 시간.


수용자도 없는 버스.

이제는 좀 활기가 띌까.


4명의 근무자가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수용자를 묶었던 보호장비만

여기저기 가득할 뿐

빈자리가 몇 십 개나 되는

단출한 대구로 향하는 45인승 호송 버스.


수용자는 없지만 여전히 계장님은

맨 앞 조수석에, 주임님은 앞쪽, 부장님은 버스 꼬리 쪽 맨 뒤 오른쪽 구석, 원대는 그 사이 어딘가 누구에게도 휴대폰 화면이 안 보일만한 곳을 찾다가 7열에 앉는다.

완벽한 거리에 완벽한 균형이다.


휴대폰을 보며 혼자만의 웃음을 지으며 온다. 계호 할 사람 하나 없지만 활기는 딱히 없다.


그런데 좋다.


조용한 활기 없는 시간이

원대와 다른 근무자에게는 그렇게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다.


교정직은 직원과 직원이 만나

같이 일을 하더라도 잠깐 협동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말 없이 헤어지는 게

우리네 분위기인 것을.


마치

악당을 퇴치하기 위해 동화 마을로 내려간 12 지신 동물들이 악당을 퇴치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 없이 알바트로스로 복귀하는 '꾸러기 수비대' 멤버들 같이.



원대는 퇴근과 동시에 느슨한 사람들과 고생하셨다는 느슨한 인사를 나가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과만 주고받고 교도소 정문을 조용히 총총 나선다.


끈끈하게 연결된 바깥사람들과의

시간을 위해 챙겨 놓은 당찬 발걸음과 에너지를 가지고..





자발적 고립주의자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발적 고립(Voluntary Isolation)'을 선택한 사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적 교류나 관계를 최소화하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하거나 멀리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을 말합니다.


​특징:


타의에 의한 단절이나 외로움을 뜻하는 '고립(isolation)'과 달리, 스스로 선택한 '고독(solitude)'의 시간을 통해 재충전, 자기 성찰, 집중, 창의력 발휘 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행복한 삶을 위해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관점과도 연결됩니다.


※ 자발적 고립주의자 단어 정의 출처 :

책 《라이프트렌드2025》와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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