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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알바의 속사정

경험과 감정을 문장으로

by 돈태

휴일이었던 전날 오후, 쿠펀치에서 쿠팡 단기근무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막상 근무를 하려니 망설여졌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하루짜리 아르바이트라니! 모든 게 생소할 텐데 나이 들어 어리바리하며 굽실거릴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앱에서 '근무 취소' 버튼을 누르려다... 말았다. '이왕 된 거 해보자!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집을 나섰다. 쿠팡 물류센터로 가는 버스 대기줄은 길었다. 다들 단기 근무자인 듯하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돼 있다. 간간이 이야기 소리가 들리긴 했다. 근무를 하다가 몇 번 마주친 얼굴들끼리 아는 체를 하는 모양새다. 핸드폰을 켜 쿠팡 버스 승차권을 또 확인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버서 안은 만석이다. 내가 탄 곳은 물류센터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에 들르는 정류장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단기 근무자를 싣고 온 버스들이 물류센터 옥상 주차장에 하나둘 도착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말없이 쏟아져 나왔다. 옥상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방향을 어디로 잡을지 몰랐다. 그런데 별로 걱정이 안 된다. 사람들 무리를 그냥 쫓으면 된다라는 직감이 발동했다. 건물 안은 더 혼잡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과 비상구로 향하는 사람들. 인파에 이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린 1층에서 같이 내렸다. 사람들 꽁무니를 쫓으니 근무 등록을 하는 데스크가 나왔다. 이런저런 안내 문구들이 암호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줄을 섰고 내 차례가 왔다.


"처음 오셨어요?"

"네."

"앱 보여주세요. 옆에 안내문 보고 따라 하세요."

"네."


등록 데스크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성과 안내문이 시키는 대로 쿠팡 와이파이에 접속한 후 앱을 열어 간단한 인적사항과 근무 형태 등을 기입했다. 이어 급여를 받을 계좌번호를 적으려는데 은행앱이 열리지 않았다. 접속 불가라는 알림이 떴다. 계좌번호를 적어야 할 칸 아래에 '다음에 입력'이라는 버튼이 보였다. 와이파이를 끄면 은행앱에 접속될 거 같지만, 혹시나 앞서 적은 인적사항 등이 날아갈까 봐 걱정됐다. 내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근무자들의 눈초리가 신경 쓰였다.


"계좌번호는 다음에 입력하는 걸로 할게요."

"네? 아니. 여기 돈 벌러 오신 거 아니에요?"

"..."

"그걸 다음에 입력하면 급여가 다음날 바로 안 나와요."

"네. 알고 있는데... 은행 앱 접속이 안 돼서요."

"아니. 돈 벌러 왔는데... 와이파이 끄고 접속하면 되죠."

"아... 네."

"다음 분 먼저 할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기 놀고 싶어서 온 사람이 있겠는가!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을 중년 여성에게 건넸다. 화면을 확인하던 중년 여성이 얕은 한 숨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분명히 멋쩍은 표정이었다. 실수를 한 사람이 지을만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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