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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Aug 23. 2018

1-1. 무력감

기습시위 경은씨 인터뷰

 4월 10일 저녁, 대학생 경은은 ‘선거 연력 하향’ 운동을 함께하는 J의 전화를 받았다. J의 목소리에서 긴박함이 느껴졌다. 


"선거 연령에 대한 문제 제기에 무관심했던 야당 의원들을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거 같아요."


내일 오후 자유한국당 현판식이 열린다. 이곳에 주요 야당 의원들이 모인다. J는 이곳에서 우리의 주장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경은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서면으로 선거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하고, 면담 요청도 했지만 야당 의원들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내일 현판식이 우리의 의견을 야당 의원들에게 표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민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은은 11일 낮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 도착했다. 지난 3월 22일부터 '선거 연령 하향'을 주장하며 농성을 이어온 곳이다. J와 다른 활동가들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른 날과 달리 다들 말수가 적다. 얼굴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경은도 마찬가지다. 다들 어제 J의 전화를 받고 기습 시위 참여를 급하게 결정했다. 

 

  “급하게 결정된 시위고 전에 이런 시위 경험이 많지 않아 다들 긴장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J가 이런 저런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아무래도 당 대표도 참석하는 행사이니 만큼 주변 경계가 삼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일반 시민처럼 보이면서 행사장 근처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경은과 J 그리고 활동가들은 흩어져서 걸었다. 일행이 아닌 것처럼 한 명 한 명 당사 앞으로 향했다. 경은은 J가 만들어온 플래카드를 돌돌 말아서 허리와 팔 사이에 꼈다. 경은은 마른침을 여러번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에 자꾸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우리 주장을 외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해본 적이 없기에 긴장이 많이 됐지만 그때는 그런 것보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거 같습니다.”      


  현판식 주변에는 기자, 일반 시민, 당직자 그리고 경찰 병력으로 빼곡했다. 경은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의원들이 현판 가림막을 걷는 것을 신호로 J가 먼저 현판식 앞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그 뒤를 이어 경은이 플래카드를 펼치며 사람들 앞에서 준비한 구호를 외친다는 계획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J와 경은이 사람들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거나 몸싸움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현판식 주변에서 대기키로 했다.       


  “플래카드를 펼친 후 바로 선거연령 하향을 왜 반대느냐고 의원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어 곧바로 뒤를 돌아 사람들에게 플래카드를 보여주려는 찰나, 건장한 남성들로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당직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제가 들고 있던 플래카드를 잡아챘습니다. 저 역시 그 남성들의 팔에 들려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고요.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는 순간에도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든 플래카드가 사진은 찍혔을까? 내가 소리 지른 것을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들었었까? 국회의원들은 내 주장을 들었을까? 후에 제가 찍힌 사진이 신문에 실렸더라고요.”     


  순식간에 제압된 경은은 사람들 앞으로 다시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금 전 자신을 끌고 나왔던 남성들과는 다른 복장의 사람들이 경은의 주변을 애워쌓다. 형광색 띠를 어깨와 허리에 두른 경찰들이었다. 그렇게 경은의 마지막 시도는 단 몇 분만에 경찰들에 둘러 싸여 무력하게 끝났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현판식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후에야 다른 일행들을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J씨는 넘어져 옷 이곳저곳에 찢겨 있고, 팔과 어깨에 타박상을 입은 일행도 있었습니다. 경찰을 향해 ‘왜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며 끌어내느냐’며 울부짖는 한 일행을 바라보며 길바닥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긴장이 풀리니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경은은 현재 21살이다. 대한민국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 경은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의 참정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력감'이다. 경은 자신도 뼈져리게 느꼈던 그 무력감. 그런데 투표권이 없는 이들의 무력감은 더할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청소년들만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도 청소년 인권적인 측면에서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8살 때부터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법적으로 미성년의 나이에 사회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항상 느낀 점은 무력감이었습니다. 바꿔야 한다고 소리를 쳐도 사회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청소년들의 사회적 무력감은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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