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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Dec 17. 2021

죽음, 그 너머로

 성경중 골로새서 1장 18에는 "또한 그분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분 자신께서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라는 부분을 주목해 보자. 죽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부활하신 분이라고 하지 않고 처음 난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만이 죽음에서 나셔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끝이 아니란 말인가? 두 번째, 세 번째...  죽은 후에도 다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후엔 무엇이 우릴  기다린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고,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심각하게 생각할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나 쉽사리 죽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죽은 뒤 무언가가 우릴 기다린다면, 심지어 우리의 일생이 판단받고  잘 살았는지 저울질되고 심판받는다면 죽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이전의 임사체험과 관련된 글에서 사후세계가 있음을 밝힌 바가 있었다.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소멸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는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생애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몸을 입고 살고 있지만 어느 날 육신의 몸을 벗게 될 때, 마치 차에서 내리듯 우린 우리의 육신을 벗게 될 것이다. 차에서 내린 내가 여전히 존재하듯, 육신을 벗은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여전히 인지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후회도 하고 바라기도 할 것이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운명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하여 심판 날에 낱낱이 진술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에 죽음을 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선한 이나 악한 이나,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흙수저를 갖고 난 사람이나 금수저를 갖고 난 사람이나, 네이버 검색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사람이나 이름 석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는 누구나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에 대해, 자신의 한 말에 대해 진술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생에서 속이고 모면하고 비켜가면 된다고 생각하나 죽은 뒤 이 모든 것은 드러나고 자신의 일에 대해 하나하나 우린 진술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대학교와 그 이후 사회생활 진출을 위해 중고등학교 생활을 보낸 것처럼, 우린 다음 생을 위해서라도 이생을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시대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는가가 다음 시대에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것인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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